국회의원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첫째는 위성정당 금지 선언이고, 둘째는 공천 기준을 공개하고 민주적이고 투명한 공천 시스템 확립하기이다. 셋째는 원내교섭단체 기준을 완화하고 소수정당이 국고보조금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건강한 국회개혁을 위해서는 거대 양당의 기득권 내려놓기가 중요하다.
제21대 국회의원들이 2020년 7월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개원식에서 국회의원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수능시험 한달 전까지 교육부가 해당 연도 대학입시 제도를 확정하지 않고 뭉그적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험생은 물론이고 교사와 학부모들까지 분기탱천해서 일대 혼란이 일 것이다. 무책임한 행정에 대한 불신과 비난으로 동맹휴학까지 일어날 만한 상황이다.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황당한 가정이지만.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져도 누구 하나 책임지거나 소환되지 않고 스리슬쩍 넘어가는 곳이 있다. 대한민국 입법부 국회가 그렇다. 2016년 20대 총선은 선거일을 한달여 앞두고 2월28일에야 선거구가 확정되었다. 2020년 21대 총선은 더 늦어져서 3월6일에야 간신히 선거구 확정이 이루어졌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2(국회의원지역구 확정) 제1항은 “국회는 국회의원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법을 무시한 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구를 쪼개고 합치느라 총선 한달 전까지 ‘배 째라’ 전략으로 나가는데도 유권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주어진 선택지에 기표 도장을 누르고 돌아오는 일뿐이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헌법재판소는 당시 선거구의 인구편차가 3:1까지 허용되는 것은 표의 등가성을 부정한다며 헌법불합치를 선고하고 2015년 12월31일까지 개정안을 만들 것을 명했다. 그러나 국회가 차일피일하는 바람에 2016년 1월1일부로 모든 선거구가 무효가 되는 법적 진공상태를 맞았다. 선거구가 사라졌으니 현직 국회의원들도 자격 상실이 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느냐는 논란도 일었다.
21대 총선에서는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과 다당제 환경을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비례대표 의석을 가로채기 위해 거대 양당이 나란히 위성정당을 만드는 기발한 꼼수 경쟁이 벌어졌다. 원 소속 정당에서 탈당이나 제명 등의 방법으로 국회의원을 꿔주는 위성정당 위장전입도 선거가 임박해서 번갯불에 콩 볶듯 이루어졌다.
다음 22대 총선은 내년 4월10일이다. 법대로 하자면 총선 1년 전인 올해 4월10일까지 선거구를 확정해야 한다. 오늘부터 두달 반 남았다. 그 기간 안에 선거구를 확정하려면 그 이전에 공직선거법 개정부터 완료해야 한다. 한 선거구에서 한명 뽑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할지, 선거구의 규모를 키워서 2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할지, 어느 지역구를 통합하고 어느 지역구를 분할할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지난 11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회가) 법정 시한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현역 의원들이 총선 경쟁에서 엄청난 이득을 누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도덕적 해이’라는 질타를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자성을 촉구하며 “집중 토론, 국민 참여, 신속 결정을 3대 원칙으로 세우고 3월 안에 선거법 개정을 끝내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국회의장의 호소에도 지금까지 보름여간 크게 진척된 사항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국회에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어 있고 여러 선거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지만 정작 다수 국회의원의 관심사는 다른 데 있다. 국민의힘은 3월8일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대표로 뽑힐 것이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친윤이냐 비윤이냐, 결선투표에서 비윤 후보들의 연합이 성사될 것이냐를 두고 하루하루 주판알 튕기기에 분주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뚫고 총선까지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누구 밑에 줄 서야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윗전에 보이는 모습이 중요하지 국민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그런데 윗전만 신경 쓰다가 국민에게 철퇴를 맞는 수가 있다. 윤심과 명심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다가 민심을 놓치면 정치생명 끝이다. 그래서 국회의원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밥그릇 지키기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면 씨알도 안 먹힐 테니, 밥그릇 지키기를 위해 지금보다 조금은 더 현명해지시길 바라며 드리는 고언으로 들어주시길.
첫째, 위성정당 금지를 선언할 것: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바지사장 세우듯 꼼수 정당을 만든 게 문제다. 사과하고 재발 방지 조항을 만들라.
둘째, 공천 기준을 공개하고 민주적이고 투명한 공천 시스템을 확립할 것: 줄 세우기 공천은 자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다 망한 정당 여럿 봤다.
셋째, 원내교섭단체 기준을 완화하고 소수정당이 국고보조금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할 것: 건강한 국회개혁을 위해서는 거대 양당의 기득권 내려놓기가 중요하다. 그런 자세 없이 개혁을 논하는 위선에 국민은 속지 않는다. 국민들이 힘은 없지만 뭘 모르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