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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용석의 언어탐방] 크리스마스: 문화적 슈퍼스타의 탄생

등록 2022-12-20 18:48수정 2022-12-20 19:08

신학자 돈 큐핏은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교의 디즈니화(Disneyfication)다”라고 풍자했다. (…) 그래도 <나니아 나라 이야기>를 쓴 루이스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크리스마스의 세속적 의미 또한 소중함을 표현했다. “항상 겨울만 있고 크리스마스는 결코 없다면, 오! 그건 상상할 수도 없어.” 크리스마스가 길고 긴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고마워하는 어른들도 많다. 이 소박한 통속성은 용서받으리라.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김용석 | 철학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숭엄한 외침과 함께 거센 말발굽 소리를 내며 철갑을 두른 기사들이 달려간다. 이어서 중세시대 고위 성직자가 “하늘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짓말한 자, 거짓 증언한 자, 거짓 믿음을 가진 자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더럽힌 자를 처형한다”고 선언한다. 한 여인이 화형에 처해진다. 여인을 휘감던 불길은 시간을 뛰어넘어 대규모 현대 전쟁터의 화염으로 이어진다. 방독면을 쓴 군인들이 포화 속을 헤쳐 나간다. 포탄에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병사가 하늘을 향해 도움을 간구하며 외친다. “지저스, 지저스!” 예수는 벌떡 꿈에서 깼다.

로저 영 감독은 그리스도의 일생을 담은 영화 <지저스>(Jesus)를 이렇게 ‘예수의 꿈’으로 시작한다. 출가하기 전 속세의 아버지 요셉과 목수 일을 하던 예수는 미래를 꿈꾼 것이다.

지난 2천여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일이 있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끔찍한 일도, 흐뭇한 일도 있었다. 인류 역사의 상당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와 종교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은 종교와 직접 연관 있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 종교에 귀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지성적, 도덕적, 예술적 차원에서 넓고 깊은 삶의 의미를 가져다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유에 관해서는 방대한 연구와 수많은 해석이 있으므로 간단히 논할 거리가 아니지만, 예수 이야기는 신화적 요소와 일상적 요소가 교차하며 전개됐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로저 영의 영화에서 예수가 벌떡 꿈에서 깨는 바람에, 옆에서 잠들어 있던 요셉도 깨어난다. 요셉은 자기도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네 엄마가 만든 빵을 보았어. 오븐에서 방금 꺼내 아직 따끈따끈한 빵 말이야”라고 천연히 말한다. 둘은 목수 일감을 찾아 길을 가다가 들판에서 낮잠이 들었던 터였다. 예수는 “빵을 드시려면 계속 꿈을 꾸시죠”라며 미소 짓는다. 요셉은 정색하며 “먹을 건 없고 돌을 베고 자다니. 나는 이 짓을 계속하기엔 많이 늙었어. 우리 어서 일감을 찾자꾸나”라며 서둘러 일어선다. 이 가상의 일화에서도 예수의 삶에는 꿈과 현실, 신적 계시와 일상의 의무가 교차한다.

영화의 술어를 사용하면, 예수에게는 신적 캐릭터와 인간적 캐릭터가 마치 유전자의 이중나선 구조처럼 교차하며 얽혀 있다. 그의 삶도 신화와 일상사가 서로 머리를 길게 땋아가듯이 전개되는 이야기들로 전해진다. 이런 캐릭터의 삶은 사상적으로 탐구되고, 예술적으로 표현되며, 도덕적으로 실천을 고민하게 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물음표와 느낌표가 공존하는 캐릭터는 당연히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깊고 넓게 자극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문화적 슈퍼스타’다. 그럼으로써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일상의 문화에도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곧 크리스마스다. 많은 사람에게 일상의 문화가 된 축제다. 우리말 외래어가 된 영어 크리스마스는 ‘Christ’s Mass’의 줄임말이다. 크라이스트는 그 어원이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에, 마스는 라틴어 ‘미사’에 있다. 곧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 탄생을 위한 모임’이란 의미를 지닌다. 크리스토스는 히브리어 ‘마시아흐’(마쉬하) 곧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옮기면서 나온 말이다. 이는 잘 알려져 있듯이 구원자, 해방자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근엄한 말이다. 하지만 구원받을 자는 속세에서 고통받는 자들일 터, 구원자의 일은 세속적 거사를 함의한다. 그리스도와 연관한 일들에는 서로 모순된 것들이 이중나선 구조로 밀착해 있음을 어찌하랴.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다. 사제의 제의적 진중함과 서민의 축제적 부박함이 함께해왔다. 신학자 돈 큐핏은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교의 디즈니화(Disneyfication)다”라고 풍자했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마음에 안 든다. 모두 사기를 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줄곧 내뱉는다. “바, 험버그!”(Bah! humbug!), 곧 “흥! 사기꾼 같으니라고!” 하며 참을 수 없는 불만을 표출한다. 이 ‘명대사’는 크리스마스의 현대적 풍습을 폄훼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도 <나니아 나라 이야기>를 쓴 루이스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크리스마스의 세속적 의미 또한 소중함을 표현했다. “항상 겨울만 있고 크리스마스는 결코 없다면, 오! 그건 상상할 수도 없어.” 크리스마스가 길고 긴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고마워하는 어른들도 많다. 이 소박한 통속성은 용서받으리라.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지 잘 안다. 나같이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가끔 크리스마스를 어찌 의미 있게 보낼지 고민하기도 한다. 언급했듯이 그리스도의 문화적 의미는 소중하며 유용하다. 크리스마스를 문화의 각 분야에서 잠시나마 그리스도의 말과 삶을 반추하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을 듯싶다.

철학자 앤서니 케니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도덕적 가르침은 전례가 없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예수는 산상 설교에서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은 플라톤 저서에 기록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었다. 그는 우리가 악행뿐 아니라 악행으로 이끄는 생각과 욕망까지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덕은 행동뿐만 아니라 열정에도 연관되며, 진실로 유덕한 사람은 포용력뿐만 아니라 자제력도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렇게 ‘전례가 있는’ 유사성은 오히려 예수 사상의 보편성을 방증한다.

예수는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태어나 갈릴리 지역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그의 말이 곧 삶이었기 때문에 그는 지역 서민과 천민들에게 깊은 인격적 감화와 비상한 실천적 감동을 남겼다. 그는 기득권자들과 투쟁함으로써 ‘권력이 비자유의 조건’임을 드러냈다. 왕이든, 제사장이든, 율법가든, 그들은 권력으로 타인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왕관과 법복의 무게처럼 권력이 그들 자신 또한 구속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케니도 예수의 철학적 유산을 이렇게 평가한다. “그리스 학문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로마 제국의 변방에 살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경도된 쟁점들에 개의치 않았던 이 유대인 교사는 철학사에 그들 못지않게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선물을 주는 것과 같다. 인류 문화는 이미 그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득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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