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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중국 ‘백지시위 세대’의 탄생

등록 2022-12-14 15:09수정 2022-12-14 18:37

중국 백지시위/김재욱 화백
중국 백지시위/김재욱 화백

지난달 25~27일 중국 주요 도시와 대학들에서 들불처럼 번진 ‘백지시위’ 이후, 코로나 확산을 막겠다며 수억명을 집 안에 가두던 ‘제로코로나’ 정책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이제 “코로나는 독감에 불과하다”는 당국의 대대적 선전 속에 코로나가 무섭게 번지고, 약과 진단키트를 구하려는 절박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백지시위’는 끝났을까? 중국 국내에서 시위는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당국이 시위대의 핵심 요구였던 봉쇄 해제라는 ‘당근’을 내놓았고, 한편으로는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체포와 위협이라는 ‘채찍’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시에 따라 전국 대학들이 방학을 앞당겨 시위의 주력인 대학생들을 급히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거리와 대중교통에서 휴대폰 불심검문으로 외국 앱을 사용하는지 등을 감시하고 있다. 안면인식 기술과 휴대폰 정보 추적으로 시위 참가자를 색출해 체포했고, 많은 이들이 여전히 구금된 채 행적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권력과 폭력이 ‘백지시위 세대’의 각성까지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20~30대 청년들은 애국주의 교육의 영향을 가장 깊게 받고 성장한, 시진핑 체제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들로 여겨져왔다. 그 청년들이 거리로 나서, “봉쇄 해제”와 함께 “언론자유” “독재가 아닌 민주를 원한다” “자유롭지 않다면, 차라리 죽음을” “황제는 필요 없다”를 외쳤다. 때론 “공산당 하야, 시진핑 하야” 같은 구호까지 등장했다. 함께 구호를 외치며 통제와 억압 대신 ‘다른 길’을 원하는 이들이 혼자만이 아님을 확인했다.

상하이에서 시위에 참여했다가 24시간 넘게 경찰에 심문을 받고 풀려난 한 청년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언론인 위안리가 운영하는 1인 방송 ‘부밍바이(bumingbai.net)에 나와 “그것(시위 참여)는 우리의 의무였다. 우루무치에서 불에 타죽은 사람들은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었다.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그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모든 이들의 요구는 달랐지만 우리가 대항하려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재, 그리고 극단적 통제 같은 것이다.(…) 이것이 백지의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 유학중인 중국인 미술학도가 개설한 트위터 계정 ‘리선생은 너의 선생이 아니다’는 중국 시위대들을 서로 이어주고, 세계와 소통하게 하는 통로가 되었다. 중국 내 SNS에 올리면 검열로 순식간에 삭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중국 네티즌들이 ‘리선생’에게 소식과 동영상, 사진들을 보내오면 ‘리선생’이 트위터에 이를 올려 중국에서 몰래 접속하는 이들이 함께 볼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지금도 ‘리선생’은 중국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수많은 소식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다.

중국 내 시위는 멈췄지만, 서울, 도쿄, 워싱턴, 런던, 토론토 등에서 중국 유학생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당국이 만들어낸 분열을 넘어, 그동안 금기시되던 위구르인들과 홍콩 시위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이번 시위의 도화선이 된 11월24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화재 사건에서 숨진 희생자들은 모두 위구르인들이었다. 아버지와 아들들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갔고, 집에 남아 있던 어머니와 어린 아이들은 봉쇄로 감금된 채 불에 타 숨졌다. 이런 상황들을 알게 된 한족 학생들이 시위에서 ‘위구르인들을 석방하라” “수용소를 폐쇄하라”고 외쳤다. 시위 청년들은 2019년 홍콩 시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홍콩인들이 어떻게 익명으로 모여 ‘물처럼’ 시위를 했는지를 배웠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백지시위’도 홍콩 시위대가 했던 방식이다.

‘백지시위 세대’의 변화를 향한 이 거대한 열망과 용기를, 시진핑 주석은 계속 억누를 수 있을까.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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