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 시내의 한 건물 스크린에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사망 뉴스가 나오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의 고강도 방역 정책에 대한 항의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장쩌민(96) 전 국가주석이 사망하면서 중국 사회에 정치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장 전 주석 장례 등을 계기로 시민 불만이 결집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면서, 중국 당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모인다.
장 전 주석 사망 다음날인 1일 중국 사회는 급속히 추모 분위기에 들어갔다. 관영 <인민일보>가 이날 신문을 흑백으로 발행했고, 바이두와 알리바바, 징둥 등은 전날 저녁부터 누리집을 흑백으로 전환했다. 중국공산당은 시진핑 국가주석을 포함한 698명의 장례위원 명단을 발표하는 등 전 최고지도자에 대한 장례 절차를 시작했다.
최근 시작된 방역 정책에 대한 항의 시위에도 영향이 전해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모인 텔레그램 단체방에 “오늘 우리 모두 거리로 나가 국화꽃을 들자”는 글 등이 올라오고 있다고 전했다.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폭발한 1989년 톈안먼(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언급하며 “역사가 얼마나 비슷하냐”고 쓴 글도 올라왔다고 한다. 장 전 주석의 상하이 자택 앞에 시민들이 꽃을 놓고 가는 영상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지만,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중국 당국이 추모 열기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으려 움직인 흔적도 있다. 1일 오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와 틱톡의 중국 버전인 더우인에 장 전 주석 사망 관련 글은 언론사나 공공기관 등 승인을 받은 계정에만 올라와 있다. 일반인이 올린 별도의 글은 찾아볼 수 없고, 언론사 등이 올린 공식적인 추모 글에 댓글만 달 수 있었다. 장 전 주석 사망과 관련한 공식적인 추모 뜻 외에 다른 의견은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일부 누리꾼들은 ‘장쩌민’(江澤民) 대신 ‘장장저’(江長者)라는 이름으로 장 전 주석에 대한 추모 글을 올리고 있다.
최고지도자 사망을 계기로 민심이 분출한 사건은 중국에서 종종 있었다.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최대 정치 항의 시위로 평가되는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이 대표적이다. 민주화 요구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다 실각한 후야오방 전 총서기가 그해 4월15일 정치국 회의 도중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학생과 노동자들이 모이면서 톈안먼 사건이 시작됐다. 후야오방의 죽음이 톈안먼 사건을 일으킨 핵심 요인은 아니었지만,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불만이 집결됐고, 수십만명이 모이는 거대한 정치 운동으로 이어졌다.
앞서 1976년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사망 때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그해 1월 저우 전 총리가 사망하고 3월 청명절을 계기로 수많은 시민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톈안먼 광장에 모였다.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장칭 등 이른바 ‘4인방’은 경쟁자였던 저우 전 총리의 추모행사를 방해했고, 시민들은 이에 반발해 4인방과 이들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대 시위를 진행했다. 이른바 1차 톈안먼 사건이다.
중국 경제의 초기 고속성장기에 해당하는 ‘장쩌민 시대’에 대한 향수는 장 전 주석 추모 열기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장 전 주석은 집권기였던 1990년대 민주화 요구와 노동 운동을 강력하게 탄압하고 부정·부패를 제대로 막지 못하는 등 공과가 있지만, 시 주석 집권 이후 진행된 강력한 사회 통제와 고속 성장의 중단은 그의 시대에 대한 호감을 높이고 있다.
장 전 주석 장례위원회는 아직 장례 일자와 방식, 절차 등은 내놓지 않았지만, 추모대회가 열리는 날까지 베이징 톈안먼과 인민대회당 등에 조기를 게양하고, 재외 공관에 빈소를 마련해 조문을 받기로 했다. 마오쩌둥은 특수 방부 처리돼 베이징의 기념관에 안치됐으나, 저우언라이 전 총리 때부터 화장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1997년 사망한 덩샤오핑은 검소하게 치르라는 유언대로 7일장을 거친 뒤 1만여 명의 소규모 추도객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졌다. 장 전 주석의 장례는 유족과의 협의를 거칠 것으로 보이지만, 코로나19 확산 등 탓에 대규모 장례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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