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활동가들이 지난달 19일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열린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세계 지도자들에게 지구 온도 1.5도 제한 목표를 유지하고 개발도상국에 기후변화에 따른 ‘손실과 피해’ 보상을 할 것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샤름엘셰이크/AP 연합뉴스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연말은 돌아봄의 시간이다. 찬바람이 부는 12월로 들어서면 마음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한 거라곤 하나도 없이 365일을 보낸 이라도 모종의 매듭을 지을 때다. 한해를 어떻게 보냈던가?
그러게. 정말 어떻게 보낸 것인가? 하나의 사회로서, 하나의 공동체로서 말이다. 물론 이 질문은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다. 지면의 제한으로 인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한가지에 한해서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우선 그것이 뭐냐고 답하느냐가 문제의 반은 차지한다. 정치? 경제? 안보? 당연히 아니다. 모두 중요하지만, 최상급의 위치를 줄 만한 것들은 아니다. 너무나 당연히도 지구 그리고 환경이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바로 그게 문제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가령, 지난 30년간 전 세계가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골몰하고, 토론하고, 싸운 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경제불황도, 전쟁도 아니다. 기후변화다. 올해 이집트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총회는 무려 27차 회의였다. 27차! 그런데도 이것이 지구인에게 가장 중요하지 않다는 이는 대체 무엇을, 무슨 근거로 우선순위의 가장 위에 놓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동의하든 안하든, 기후변화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고 올해를 돌아보도록 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은, 사회는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 결론부터 말하자. 올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난 30년 동안 해온 그대로, 철저히 손 놓은 채 한해를 보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해서는 안될 일은 더 했다. 탄소배출을 늘렸고, 에너지 집약적 삶의 방식을 확대했다. 가만히 있어도 안될 판에 악화시키는데 열중했다.
이젠 기온상승을 1.5도로 막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그에 근접이라도 하려면 한해에 탄소배출을 7.6% 정도씩 확확 줄여야 하지만 오히려 매년 늘리고 있지 않은가? 다른 말로 하면, 이 정도 상황에 맞는 대응이라면 그동안의 모든 것을 전복시키는 변화여야 한다는 뜻이다. 민, 관, 어디든 그런 변화의 기미라도 나타난 곳이 있는가?
매년 탄소배출을 늘려온 우리나라는 2년 연속 세계 10위 배출량을 기록하며 영국과 프랑스 등보다도 많은 양을 토해냈다. 기후변화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기후변화대응지수’에 있어서는 60개국 중 57위로 ‘매우 저조함’을 인정받았다. 2020년 50위, 2021년 56위에서 계속 추락 중이다. 올해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시원한 여름을 겪으면서도 폭염 운운하며 과한 냉방의 고삐를 놓지 않았고, 이제는 대중교통에서도 초겨울 난방이 일상이 됐다. 문 연 채 에어컨을 돌리는 개방냉방도 올여름 거의 표준이 됐다. 재계는 유행처럼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를 떠들곤 있지만 하나의 투자지표로서 대충 충족시키려는 시늉만 했을 뿐, 본 업무와 무관한 강연회, 청소년캠프, 임직원 봉사활동 등 표피적인 제스처로 진짜 감축을 대신했다. 산림청은 탄소저장고인 산림을 여전히 싹 베어버리는 모두베기를 했고, 태양광은 가장 먼저 설치돼야 할 건물 옥상 등 인공표면으로 확대되지 못했다. 탄소배출 없던 행위도 전기기반으로 대거 대체됐다. 무인 키오스크, 스마트 점포가 정부 지원을 받으며 늘어만 갔다. 영업시간 이후에도 가게와 건물들 간판은 환하게 빛났다.
기후위기에 어찌 이토록 무대응일 수 있을까? 하긴,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2026년이면 매일 1000톤씩 나오는 서울의 쓰레기는 갈 곳이 없는데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 걸 보면 이해가 간다. 우리의 올 한해 환경성적표는 말할 필요도 없이 낙제점이다. 문제는 나만 못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같이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