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사진 가운데) 일본 총리. 총리관저 누리집 갈무리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일본 정부·여당이 안보와 관련해 연말 국가안보전략, 방위계획대강, 중기방위계획 개정에 나서는 등 일본 방위의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현 방위계획에서는 5년간 25조엔(약 240조원) 정도였던 방위비가 앞으로 5년간 43조엔(약 412조원)으로 대폭 증가하는 안이 담긴다. 일본이 공격받기 전이라도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될 예정이다.
전후 일본 헌법이 시행된 지 75년, 일본은 헌법 9조 아래서 평화국가로서 행보를 이어갔고 주변 국가들도 그렇게 평가를 해왔다. 1930~40년대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로 아시아 국가들에 고통을 준 일본의 헌법 9조에 근거한 경무장, (공격받을 때만 군사력을 행사하며 그 범위는 최소한으로 한다는) 전수방위 노선은 아시아 국가들을 안심시켜왔다. 이런 이유로 일본 안보의 기본정신을 전환하는 논의는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
기시다 후미오 정권이 추진하는 안보정책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우리가 지켜야 할 국가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국가는 영토·주권·국민 세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영토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 적당한 자위력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합의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최근 일본의 문제는 지켜야 하는 국민 상당수가 외부의 적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요인에 의해 피폐해지고 곤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구도는 만주사변(1931년) 이후 중국 대륙으로의 침략이 계속됐던 1930년대에도 존재했다. 국가정책이 군사 우선으로 기울어지면서 농촌은 피폐해지고 실업자가 넘쳐났다. 일부 정치가나 군인은 ‘넓은 의미의 국방’을 강조하며 빈곤과 실업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력이 떨어지고 국민이 생활고에 허덕이는 상황에선 국력이 저하돼 무기를 증강해도 방위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당시 논의는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일본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일본의 한해 출생아는 80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경쟁력 저하와 엔화 약세로 무역수지 적자가 고착화하고 있다. 정부가 지켜야 할 국민의 생활이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세금을 큰 폭으로 올려 방위비 증액에 나설 경우 국민은 힘들어지고 사회의 황폐화가 한층 가속할 우려가 있다. 국민의 생명과 생활, 일본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협은 일본 내부에 존재한다.
어설픈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도 일본 안전에 도움 되지 않는다. 적의 공격 거점을 모두 파악하고 그것을 일격에 궤멸할 수 있는 무기나 정보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국이 일본 공격에 착수했다는 정보를 어떻게 입수할 수 있을까. 그 실제 운용은 미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일본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일본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는 잘못된 정보를 흘릴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자국 방위와 무관한 선제공격을 할 위험이 있다.
일본의 방위정책 전환은 기시다 정부가 구성한 전문가 회의와 여당(자민당과 공명당)의 논의로 진행되고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도 당내 논의가 이뤄지고 있기는 하다. 현시점에선 기시다 정부의 안보정책 대전환에 찬성하는 방향으로 당내 논의가 모이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입헌민주당은 입헌주의, 즉 헌법에 입각한 정치를 기본이념으로 걸고 있는 만큼 헌법 9조의 실질적인 파괴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국민 불안을 고조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보정책 논의의 첫 단계는 10년 정도 진행된 이지스 시스템 탑재함, 상대의 공격력이 미치는 범위 바깥에서 발사하는 스탠드오프 미사일 도입 등 방위력 정비의 내실을 검토하고 일본의 안전에 기여할지 판단하는 것이다. 방위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국민적 합의는 있다. 하지만 방위비를 어느 정도, 누구 부담으로 늘릴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국회의 책임이 추궁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