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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레고랜드 사태, 김진태 지사 “좀 미안”으로 넘어갈 일인가

등록 2022-12-10 11:00수정 2022-12-10 19:51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세계 열 번째로 개장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한겨레 허윤희 기자
세계 열 번째로 개장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한겨레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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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한 해를 되돌아보는 각종 시상식이 열린다. 국내 자본시장에도 이런 행사가 있다면 2022년의 주인공은 단연 레고랜드 사태와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꼽힐 것이다. 물론 ‘빌런’(악당)으로서 말이다.

레고랜드 사태는 그 전례 없음과 파장 면에서 단순히 2022년을 넘어 한국 자본시장의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다. 원인을 제공한 김 지사는 10월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좀 미안하다”고 했다. 이게 ‘좀 미안’하고 말 일인가?

레고랜드 사태엔 복잡한 부동산금융이 얽혀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왜 자금시장 경색에서 시작해 증권사와 건설사의 위기로까지 확산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재무제표 얘기는 아니지만 한국 자본시장 역사에 기록될 사건을 정리해두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레고랜드 사태 ‘재발 방지책’도 함께 제시해보려 한다.

레고랜드 사태의 주요 등장인물은 3명이다. 먼저 채무자인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있다. ‘공사’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공기업이 아니다. 강원도가 지분 44.02%, 레고랜드 브랜드 사용권을 보유한 영국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이 22.54%를 각각 출자한 민간 개발 시행사다. 2012년 엘엘개발(LL Development)이 라는 이름으로 설립해 2019년 강원중도개발로 회사명을 바꿨다.

중도개발은 강원도 춘천시 의암호에 있는 하중도 섬 일대 91만6989㎡(약 27만8천 평) 부지에 장난감인 레고 상표를 이용한 놀이동산(테마파크)과 호텔, 상가, 콘도 등이 들어설 토지 조성 공사를 맡았다. 멀린 쪽이 지분 100%를 보유한 별도 회사 레고랜드코리아가 놀이동산에 시설물을 설치해 입장료 수입 대부분을 가져가고, 중도개발은 상업용지를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구조다.

다른 등장인물은 사실상의 대출자인 투자자 집단이다. 대형 부동산 개발은 토지 매입부터 인허가, 사업 승인, 착공 등을 거쳐 준공에 이르기까지 수년이 걸린다. 불확실한 사업에 이렇게 오랫동안 돈을 빌려줄 사람을 구하긴 어렵다. 그래서 통상 만기가 3개월, 최장 1년 이하인 단기어음을 발행해 분양 수입이 들어올 때까지 자금을 돌린다. 먼저 발행한 어음 만기가 돌아오면 새 어음을 발행해 앞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레고랜드 사업에서도 비엔케이(BNK)투자증권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아이원제일차)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이비시피) 2050억원어치를 발행해 투자금을 모은 뒤 중도개발에 빌려줬다. 에이비시피 발행을 맡은 비엔케이로부터 이 어음들을 사간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11곳이 다시 투자자들에게 상품을 팔았다. 투자자는 단기자금을 굴려 높은 이자를 받고 증권사도 중간에서 판매수수료 등을 떼니 모두가 행복한 장사다.

마지막 등장인물은 강원도다. 에이비시피는 시행사가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번 돈으로 대출금을 잘 갚겠다는 약속(대출 약정)을 기반으로 발행한다. 그러나 춘천의 섬에 짓는 놀이동산이 잘될지 누가 알겠나.

중도개발은 설립 이후 2021년까지 누적적자(결손금)가 51억원이다. 주주들이 낸 자본금도 96억원이나 까먹었다. 2022년 4월엔 856억원 규모인 토지 자산의 평가 손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회계 감사인으로부터 ‘경고장’(한정의견)까지 받은 상태다. 강원도는 중도개발이 대출 원리금을 못 갚으면 그 돈을 대신 갚겠다고 지급보증을 섰다. 레고랜드 에이비시피가 시장에서 팔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그런 중도개발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넣겠다는 김 지사의 발표는 시장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채무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신용등급이 국가에 준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보증 선 빚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처음부터 빚은 갚을 생각이었다고 항변한다.)

가뜩이나 최근 단기자금 조달 시장에선 부동산 개발에 불안감이 싹트고 있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할 우려 때문이다. 강원도의 선언은 비좁은 길에 인파가 몰렸는데 맨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제 길을 가겠다며 앞사람을 민 격이다.

이번 사태가 확산한 이유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강원도와 비슷한 보증(신용보강, 어음매입보장 등)을 선 증권사와 건설사가 많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 에이비시피 투자 수요가 급감하며 신규 어음 발행을 통한 ‘투자금 돌려갚기’가 어려워지자 증권사와 건설사들이 이를 떠안게 된 셈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2022년 12월~2023년 6월 만기가 도래하는 부동산 개발 관련 단기어음과 사채(증권사 및 건설사 신용보강)는 약 67조5천억원 규모에 이른다.

정부가 50조원 이상 지원책을 약속하면서 연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공포는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김 지사가 “좀 미안”이라고 사과하고 강원도가 보증채무 2050억원을 갚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넘어가는 건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책임을 묻지 않으면 이런 일이 또 생기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건 앞으로 강원도 같은 개별 지자체도 신용등급을 깐깐하게 평가해 매기자는 거다. 그러면 지자체장이 시장을 무시한 정치적 결정을 하거나, 큰 빚을 지고 경제성 없는 전시성 사업을 벌이는 걸 줄이는 순기능이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신용등급 하락 우려 때문이다.

현재 신용평가사들이 지자체 신용등급을 별도로 부여하지 않는 이유는 지자체 재정의 중앙정부 의존도와 중앙정부의 지자체 통제 수준이 높아서라고 한다. 이참에 지방분권도 함께 논의하면 어떤가. 시장 무서운 걸 알아야 시장을 상대로 엉뚱한 일을 벌일 유인도 줄어든다.

찬호 공인회계사 Sodoh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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