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지방과 전북내륙, 경북내륙에 한파특보가 발효된 2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앞에서 수시 논술고사에 응시하는 수험생이 손난로와 담요를 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한겨울에 접어든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주말 사이 한파주의보가 발표됐다. 강원도부터 전북과 경북 일부까지 중부지방 전역에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한파주의보 발표 기준은 꽤 복잡하다.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10도 이상 내려가서 3도 이하로 떨어지고 평년보다도 3도 이상 기온이 낮아질 때, 최저기온이 영하 12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이틀 이상 계속될 때, 혹은 심각한 저온으로 인해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시기에 따라 다른 한파의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의 날씨는 시시각각 급격히 변한다. 그래서 계절을 거르지 않고 다양한 기상특보가 발표된다. 강풍, 풍랑, 호우, 대설, 건조, 폭풍해일, 한파, 태풍, 황사, 폭염 특보. 흥미롭게도 폭풍해일을 제외한 모든 현상이 두 글자의 한자어로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관상감 때문인지 기상용어에는 유독 한자어가 많다. 한파(
寒波)도 예외가 아니다. 그중에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한자 표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호우(
豪雨)다. 일상생활에서 호(豪)는 ‘호기롭다’ 혹은 ‘호사를 누린다’ 등에 사용된다. ‘영웅호걸’이나 ‘호언장담’과 같은 사자성어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 뜻을 따른다면 호우는 ‘호탕한 비’ 혹은 ‘씩씩한 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터무니없는 표현이다.
조선시대에는 큰비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대우
(大雨)라는 표현이 주로 등장한다. 호우는 단 한차례 <순종실록부록>에 등장한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순종실록부록>는 조선왕조 멸망 뒤 기사로 엄밀하게 따지면 실록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실록, 여기에 처음 등장한 표현은 아마도 일본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큰비를 뜻하는 우리말로 ‘억수’가 있다. ‘비가 억수로 내린다’.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사투리가 아니라 잊혀지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한파는 호우보다 훨씬 과학적인 표현이다. 한파는 보통 대륙의 찬 공기가 한반도로 빠르게 내려오면서 발생한다. 특히 ‘시베리아 고기압’이라 불리는 대륙의 찬 공기 덩어리가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할 때 발생한다. 만약 동해 상에 저기압이 발달한다면 찬 공기는 남쪽으로 더욱 깊숙이 내려올 수 있다. 한반도 북서쪽에 고기압(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이 그리고 동쪽에 저기압(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이 자리하면, 그 사이로 강력한 북풍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파를 초래하는 고기압과 저기압은 종종 쌍을 이루어 발생한다. 흥미롭게도 고기압-저기압 쌍은 한반도 근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같은 위도대를 따라 고기압-저기압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에 한파가 발생하면 종종 북미나 유럽에도 한파가 발생한다.
한파에 물결 파(波)를 사용한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겨울철 한파와 반대되는 현상으로 여름철 폭염이 있다. 폭염의 발생 원인은 한파와 사뭇 다르다. 그러나 공기의 흐름(혹은 파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래서 폭염을 열파(
熱波)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극 한파. 최근 몇년 동안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표현이다. 찬 공기가 저 멀리 북극에서부터 한반도까지 내려와서일까? 아니다. 급격히 따뜻해 지고 있는 북극과 달리, 동아시아 한파는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인과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따뜻한 북극과 추운 동아시아? 이 역설적인 현상은 여전히 학계의 논쟁거리이다. 아직 분명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발생 원인이야 어떻든 한파를 반기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올겨울 한파의 피해가 크지 않기를 바라본다. 그저 무던한 겨울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