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윌프레드 오언(1893~1918)
젊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숨을 못 쉬고, 토하면서, 비틀거리는 몸으로 물속을 허우적거리며” 숨을 거뒀다. 제1차 세계대전 이야기다.
“진흙 범벅의 쓰레기더미”에서, “죽음도 터무니없고 삶은 더 터무니없는 그곳에서” 영국 청년 윌프레드 오언은 시를 썼다. 증언을 남겼다.(오언의 시 번역은 ‘윌프레드 오웬의 전쟁시에 나타난 트라우마와 숭고의 상관관계 연구’라는 김연규의 2014년 논문에서 따왔다.)
오언은 1917년 1월에 전쟁터로 나갔다. ‘전쟁 충격’ 때문에 5월에 병원으로 실려 왔다. 몇차례 죽을 뻔한 일도, 적군을 죽인 일도 상처였다. 환상 속에서 마주친 “낯선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이 죽인 적입니다, 친구여” 같은 편을 죽음으로 내몬 일도 상처였다. 장교였던 오언은 자기 명령에 따르다 쓰러진 보초병이 나오는 악몽을 꿨다. “커다란 오징어처럼 불룩 솟”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눈알을 가진 병사였다.
그런데도 오언은 전쟁터에서 겪은 일을 잊으려 하지 않고 굳이 버르집었다. “왜냐하면 전쟁을 목표로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군인의 의무도 있지만 “세상에 경고할 수 있는 전쟁시를 쓰겠다는 시인으로서의 의무”도 있었다. “전쟁시인이 되는 것은 이처럼 회피하고자 했던 기억들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라고 김연규는 썼다.
오언은 전쟁터로 다시 나갔다. 좋은 평가를 받는 장교였다고 한다. 1918년 11월11일께 그의 형제 해럴드 오언은 이상한 경험을 한다. 해군 배를 타고 아프리카에 가 있었는데, 그날 숙소에 들어와 보니 윌프레드 오언이 자기 의자에 앉아 있더란다. “윌프레드, 여기는 어떻게 왔어?” 윌프레드 오언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럴드 오언은 깨달았다. “윌프레드가 죽었구나.”
1918년 11월11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기도 하다. 영국 방방곡곡에서 종을 쳐서 평화를 축하했다. 오언의 부모도 종소리를 들었다. 그 직후 윌프레드 오언의 궂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오언이 전사한 날은 11월4일, 종전을 딱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