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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동방정책으로 독일 통일의 밑거름을 마련한 ‘무릎꿇은 총리’

등록 2022-10-20 18:03수정 2022-10-21 02:37

[나는 역사다] 빌리 브란트(1913~1992)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던 1961년, 빌리 브란트는 서베를린 시장이었다. 이를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브란트는 분단의 비극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차분히 고민했다.

외무장관을 거쳐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가 된 그는 선거를 치를 때면 인신공격을 받았다. 혼외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낸 게 조롱거리가 됐다. 청년 시절 사회주의자가 되어(공산주의와는 거리를 뒀다) 히틀러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망명해 노르웨이 국적을 취득하고 노르웨이군에서 나치와 싸웠는데, “조국을 배신했던 사람”이라는 공격도 받았다. 1969년 10월21일 서독 총리가 됐다.

브란트는 ‘동방정책’으로 유명하다. 동구권과 잇따라 수교하고 적으로 맞서던 동독과 평화공존을 추구했다. 1971년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브란트의 측근이던 에곤 바르의 회고록을 보면, 브란트 정부가 동독뿐 아니라 소련과 미국 등 강대국들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강대국과 주변국 동의 없이는 동·서독 관계 개선이 불가능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브란트는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고 묵념을 드렸다. 세계가 놀라고 브란트의 수행원들도 놀랐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민주화운동 지도자 김대중이 군부 정권에 잡혀가 목숨을 잃을 뻔했을 때 국제사회 지도자들과 함께 ‘김대중 구명운동’에 나섰다.

냉전시대 동·서독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의 밑거름을 마련한 브란트는 1974년 비서 귄터 기욤(이전 칼럼에 쓴 적이 있다)이 동독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총리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동방정책이 동독 공작에 놀아난 것”이라는 정치공세는 없었다. “동방정책을 추진할 때 꼭 야당과 협의를 했다. 통일 정책은 초당적 지원과 주변국의 찬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에곤 바르가 사석에서 박경서 교수에게 들려줬다는 이야기다. 브란트는 살아서 독일 통일을 지켜봤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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