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도 마땅치 않지만, 금리인상 자제 방안이 나아 보인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금리인상 자제는 국내 실물경제 지키기가 핵심이고 금리인상은 해외자금 이탈 방지가 핵심이다. 그런데 금리가 급격히 인상돼 가계와 기업 부채가 부실화하고 경기침체가 심화하면, 실물경제 복구가 어렵고 따라서 해외이탈 자금은 돌아올 이유가 없어진다.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한국은 경제규모 10위의 선진국이다(IMF, 2021년 GDP 기준). 힘들게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는데 때아닌 폭풍이 몰아친다. 치명적일 수 있는 완벽한 폭풍(perfect storm)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이고 원화 국제화도 미비한 상황에서 대응 방안이 마땅치 않다. 그럼에도 비바람은 거세지고 이제 겨울이 시작되려 한다.
폭풍 발원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쟁으로 붕괴한 에너지, 원자재, 곡물 공급망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에 불을 붙여 물가상승과 기대인플레이션을 촉발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대응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제러미 시걸 교수는 연준 통화정책의 시차 오류를 주장하며, 이를 밀턴 프리드먼 교수의 ‘샤워실의 바보’에 비유했다. 지난해에는 금리인상에 실기해 물가를 놓치더니 지금은 금리를 너무 급히 올려 경기침체를 부른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도 파월 연준 의장은 현재 8.3% 수준인 미국 내 인플레가 목표치 2%로 낮아질 때까지 긴축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유엔과 국제무역기구(WTO)는 미 연준이 세계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인플레가 전쟁이라는 공급 측 요인에서 촉발됐음에도, 미 연준이 이를 금리인상으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초래된 강달러의 부담을 개방국과 신흥국에 떠넘긴다는 것이다. 강달러가 국제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표적 사례로 1985년 플라자협정을 꼽는데, 당시 미국은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추진했고 이것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실마리가 됐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한국 경제 현 상황은 물가, 환율, 금리의 3고로 요약된다. 우선 소비자물가는 상승세가 7월에 6.3%로 정점을 찍은 뒤 5%대로 다소 낮아졌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는 2%로 알려졌다. 한편 미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이 해외자금 이탈과 불안심리를 자극하면서, 연초 1190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이 10월엔 1420원 수준으로 급등했다. 한은은 지난해 말 1%였던 기준금리를 3%까지 올렸지만, 한-미 간 기준금리 차가 역전(-0.25%포인트)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올랐다.
폭풍 속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이 국가경제 위험관리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 개방경제에다 기축통화 비보유국인 한국은 선택지가 적다. 분석의 편의상 두가지 방안으로 나누어 살펴보는데, 한은의 실제 선택은 이들의 중간쯤이 될 것이다. 한쪽은 금리를 최대한 낮게 유지하면서 고물가, 고환율 및 해외자금 이탈을 허용하는 방안이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이 이런 방안을 채택했다. 다른 쪽은 미 연준을 좇아 기준금리를 최대한 인상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에서 효과적인 환율 방어가 의문이며 규모가 과다한 가계와 기업 부채가 국내 금리인상으로 부실화돼 실물경제 붕괴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어느 쪽도 마땅치 않지만, 금리인상 자제 방안이 나아 보인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금리인상 자제는 국내 실물경제 지키기가 핵심이고 금리인상은 해외자금 이탈 방지가 핵심이다. 그런데 금리가 급격히 인상돼 가계와 기업 부채가 부실화하고 경기침체가 심화하면, 실물경제 복구가 어렵고 따라서 해외이탈 자금은 돌아올 이유가 없어진다. 반면 금리인상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실물경제 회복에 노력하면, 이탈한 해외자금은 언젠가는 돌아온다. 환율과 주가 등은 사실상 상대적 평가에 불과해 위기 국면이 지나면 빠르게 정상화하는데,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시장금리가 오르고 은행 대출금리 또한 따라 오른다. 얼핏 당연해 보이나, 은행이 신규대출뿐만 아니라 기존대출 금리까지 올려 받는 것은 문제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은행 기존대출의 금리 원가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존대출 금리를 올려 받는 은행들의 관행은 금리위험을 차주에게 전가함으로써 독점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이런 관행이 기업대출, 신용대출 및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에서 유지됨으로써 은행 수익 증가에 기여한다. 최근 금감원은 국내 5대 금융지주사의 작년 이자이익을 44조9000억원으로 발표했다. 한은은 기준금리 인상 시 은행권의 이러한 여유 활용 방안을 금융당국과 소통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준금리 외에 금융주권을 지키는 방안으로는 무엇이 있는가? 9월 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4167.7억달러로 8월 말 대비 196.6억달러 감소했다. 강달러 폭풍 속에 외환보유고 감소가 반가울 리 없고 한-미 통화스와프나 원화 국제화 등이 모두 아쉽다. 다만 이들의 단기 실현 가능성은 낮은 만큼, 더 현실적인 대안의 모색이 필요하다.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국가위험관리의 핵심은 바로 수출입이다. 수출은 지난 8월까지 22개월 연속 증가했으나, 글로벌 수요 약화로 인한 반도체와 석유화학 분야의 감소세가 우려된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글로벌 강달러 추세 속에 한국 기업들에만 특별히 유리할 게 없으니, 전문성과 경제성 있는 분야를 선택, 집중해 상품의 경쟁력 제고에 전력해야 한다. 최근 바이든 정부가 자국산업 보호 기조 아래 도입한 반도체와 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으로 한국의 반도체와 전기차 수출에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한편 수입은 환율 상승과 에너지 수입액 증가 등으로 인해 수출증가율을 초과해, 올해 상반기 104억달러 규모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다행히도 연말 기준 경상수지는 흑자가 예상되지만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의 경험을 살려, 에너지 절약, 불요불급한 품목 수입제한, 겨울철 난방 줄이기,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하기 등 캠페인 시행을 고려할 수 있다.
끝으로 통화정책의 부담을 줄여줄 재정의 버팀목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생뚱맞은 감세정책과 무리한 정책의 번복으로 국가신뢰도가 급락한 영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통화정책이 브레이크(금리인상)를 밟는데, 재정이 가속페달(법인세 최고세율을 인하, 재산세 및 종부세 인하)을 밟으면 시장이 헷갈리고 정책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폭풍을 견뎌야 하는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부자증세 등으로 재원을 확보해 통화정책에 여유를 허용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특히 물가상승기에는 기업과 부자가 이득을 보고 소비자와 빈자는 손실을 보는데, 이를 방치하면 국가위험관리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취약계층에 대한 인플레 보조금과 자영업자에 대한 경영지원 등의 배려가 바람직해 보이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