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축제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축복기도를 올렸다가 정직 처분을 받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가 지난 6일 오후 지지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서울 광화문 감리회 본부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로마 시대의 이야기다. 어느 귀족 부인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남편은 만취하면 노예들을 불러다 난잡한 행동을 일삼았고 아내를 강제로 그 술판에 참석시키곤 했다. 귀부인은 더는 남편의 만행을 참을 수 없어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은 분한 마음에 일부러 아내의 기독교 스승을 고발했다. 당시 로마 행정관인 우르비쿠스는 재판을 열어 그에게 “너는 기독교인이냐?”라는 단 하나의 질문만 했고, 그렇다고 답하자 바로 사형을 선고했다. 집행도 즉시 이뤄졌다. 그때 방청석에 앉아 있던 어떤 이가 목소리 높여 항의했다. “이 판결의 근거가 무엇인가? 간음이나 살인, 도둑과 강도도 아닌 그 어떤 죄도 짓지 않은 사람을, 단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자백했을 뿐인 이를 왜 처벌하는가?” 역시 불의를 참을 수 없었던 또 다른 사람도 일어나 이에 동조했다. 행정관은 그들에게도 물었다. “너희도 기독교인이냐?” 이들 역시 병사들에게 끌려나가 처형당했다.
기원후 2세기에 있었던 이 사건은 당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유스티누스에 의해 기록돼 지금까지 전해진다. 유스티누스는 기독교 신앙을 고백했다는 이유만으로 잔혹한 고문에 시달리다 죽임을 당하는 일이 로마에서 횡행하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기독교도들은 인육을 먹고 근친끼리 난교를 한다는 헛소문이 퍼져 있음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학살과 왜곡을 막고자 로마 황제에게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아 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사실 이는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었다. 이 편지로 인해 결국 유스티누스조차 참수형을 당했으니까. 로마제국은 다신교 국가였고 황제들은 자신을 신격화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니 유일신을 주장하고, 귀족이든 노예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고 믿는 기독교가 꽤 마뜩잖았을 것이다. 기독교도를 미워하고 싫어하도록 거짓을 꾸며 퍼트리고, 본보기 삼아 처벌했다. 귀족이라고 해도 고문과 처형을 피하기 어려웠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세상이 굳이 더 정의로워지길 원하지 않는다. 자신을 중심으로 짜인 질서가 유지되길 바라기에 그 판에서 소외된 약자들을, 차별받는 소수자들을 위해 일하는 이들을 싫어한다. 조용히 입 다물게 하기 위해 자신의 권력으로 새로운 ‘죄’를 만들어낸다. 신념과 양심을 버리면 처벌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제안 역시 한 묶음이다. 로마제국의 이런 박해의 역사가 기독교의 초기 역사다. 신앙을 지킨 이들의 고통이 촘촘히 새겨진 역사이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결국 불의를 이긴 역사다.
그 이후로 2천년이 흘렀다. 2022년 10월20일 오후 1시30분.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 재판위원회는 이동환 목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동환 목사는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됐다. 성직자라는 직분에 따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신앙에 따라, 이 땅의 모든 힘없는 이들의 옆에 서 있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신의 축복을 전하려 했을 뿐인데 ‘죄’가 됐다. 2020년 10월에 열린 1심에서 교단법상 최고형인 ‘정직 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억울해서가 아니다. 성소수자 혐오에 물든 한국 개신교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한번 더 갖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년 만에 열린 항소심도 유죄선고를 유지했다.
성소수자를 축복한 것이 죄라면 저주를 해야 칭찬받는다는 것일까. 개탄할 일이다. 하지만 지난 역사에서 교단의 재판관들은 배우지 못한 것을 우리는 배운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다가, 이젠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성직자마저 핍박한다는 것은 그 권력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줄 뿐이라고. 세상이 바뀔 것을 믿는 이들은 오늘 재판정 앞에서 외쳤다. ‘우리의 축복은 더 큰 물결이 되어’ 앞으로 이어질 거라고. 나 역시 그리 믿는다. 굳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