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이 지난 11일(현지시각) 벨기에 나토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보스니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군은 사라예보를 둘러싸고 있는 산지 요새 위에서 거리를 지나다니는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퍼부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라예보 사파리>(2022)는 세르비아군이 당시 저격 기회를 제공하는 ‘사파리’ 투어를 조직했고, 여기에 세르비아의 동맹이었던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의 부유한 고객들도 돈을 지불하고 사라예보인들에게 총을 쏘는 기이하고도 병적인 짓을 벌였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안전한 공간에 모셔진 이들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표적을 구체적 인간이 아닌 익명의 존재로 생각하는 한편, 자신이 비디오게임이 아닌 현실에 개입하고 있다는 도착적 스릴을 즐긴다. 여기에는 어떤 도착적 솔직함이 존재한다. 기업 최고관리자들이 자신의 결정으로 수많은 이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안전한 공간에서 관찰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최근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서구 정치지도자들이 멀찍이서 사파리를 즐기는 이들처럼,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맞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지금 상황에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워싱턴, 런던, 브뤼셀의 안전이지, 죽어가는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핵 재앙 속에서 죽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드베데프 역시 핵무기 사용을 시사할 때 마치 인류는 사라예보이고 자신은 안전한 공간에서 핵 재앙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말한다.
메드베데프는 우크라이나에 핵무기가 출현하는 것은 러시아의 존재에 대한 위협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 모든 것을 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 아닌가. 그의 논리대로라면 우크라이나야말로 자국을 방어할 권리로 핵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가는 주권국 아니면 식민지 둘 중 하나다. 그 중간 상태의 국가는 있을 수 없다”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식민지로 간주한다.
이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우크라이나가 어느 국가의 식민지도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서구 강대국이 나서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합의를 중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군사전문가 할런 울먼을 비롯한 서구의 많은 이들은 “우크라이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에게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미국은 폭력과 전쟁을 끝낼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서구 좌파 지식인들 역시 러시아를 막다른 길로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견해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반대하는 이들은 평화주의자라면서도 서구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우크라이나는 이미 점령돼 우크라이나인들이 크나큰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많은 이들이 러시아가 체면을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지만, 이제 체면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은 우크라이나와 서구다.
메드베데프는 왜 서구가 맞대응하지 못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서구의 비겁함을 보여준다고 말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철학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메드베데프의 발언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반향한다. 양쪽이 죽기 아니면 살기의 투쟁에 참여할 때 승자는 존재할 수 없다. 한쪽이 죽어버리면 살아남은 쪽의 승리를 인정해줄 수 있는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쪽이 모두 파괴되는 것을 막으려면 한쪽이 상대의 시선을 피해 노예가 되는 첫 양보가 있어야만 한다. 메드베데프는 결국 시선을 피하게 될 것은 서구라고 믿는 것이다.
문제는 핵전쟁에서는 승자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모두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후위기라는 훨씬 더 큰 위협은 무시하면서도, 각자 안전한 장소에서 핵의 위협을 이야기하며 인류의 자기 소멸을 막는 일에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기다.
번역 | 김박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