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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노예무역에 종사하다 무인도에 표류…그가 반성한 것은?

등록 2022-09-29 18:46수정 2022-09-30 02:37

[나는 역사다] 로빈슨 크루소, 대니얼 디포(1633~ , 1660~1731)

1659년 9월30일 로빈슨 크루소는 외딴섬에 도착한다. 이날은 그의 생일이기도 했다. “9월30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며 26년 후 내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여 이 섬의 해안에 도착한 날이다.” 소설 속 크루소의 말이다.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어린이책으로 잘못 알고 흘려 읽던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종교 이야기가 많이 나와 놀랐다. 외딴섬에서 읽을거리라고는 기독교 <성서> 한권뿐. 섬에 갇힌 크루소는 <성서>를 읽는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깨닫는다. 그런데 그는 무엇을 참회하는가?

현대의 독자는 당황스럽다. 크루소는 노예무역에 종사하던 사람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잘못이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크루소는 노예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 해적에게 붙잡혀 노예생활을 했는데도 그렇다. 여러해 고생한 끝에 크루소는 슈리라는 소년과 함께 탈출한다. 그런 다음 슈리를 다른 백인에게 노예로 넘겨 버린다. 훗날 외딴섬에 표류하게 된 것도, 노예밀수를 하러 바다에 나갔다가 일어난 일이다. 그는 노예무역이 죄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뉘우치는가? 소설 첫머리에서 크루소의 아버지는 중산층의 삶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한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바다에 나가겠다는 아들을 꾸짖으며 법률가가 되라고 타이른다.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방랑벽을 억제하지 못한” 일을, 크루소는 두고두고 곱새긴다. 사람을 노예로 사고판 일은 잘못이 아닌데, 중산층으로 살지 못한 일은 참회할 죄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 소설을 쓴 대니얼 디포 스스로가 중산층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정치논객으로, 밀정으로, 토리당과 휘그당 사이 이중첩자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 “디포는 이 세상에서 남을 속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고 믿었던, 한마디로 사기꾼이었다.” 작가 콜린 윌슨의 평이다. 디포는 영어로 쓰인 최초 근대소설로 평가받는 <로빈슨 크루소>를 통해 큰돈을 벌었지만, 사업하다 생긴 빚을 갚기 싫다며 빈궁하게 숨어 살다 숨을 거뒀다. 가발을 쓴 디포와 콧수염을 기른 크루소를 포개어 빚어봤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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