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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공했지만 불행한 삶 살았던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등록 2022-09-15 19:26수정 2022-09-16 14:32

[나는 역사다] 마리아 칼라스(1923~1977)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어머니 리차 칼라스는 딸의 천재성을 이용해 한몫 잡으려 했다. “막내딸을 성공의 기계로 만드느라 애썼을 뿐, 어머니다운 애정 표현을 하는 일은 없었다.” 언니 재키 칼라스의 회고다. 전기 작가 앤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소녀의 인생에서 정상적인 것은 없었거니와 뭐가 정상인가 알기나 했을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그리스로 건너가 성악을 배웠다. 친정이 있는 그리스에서 보란 듯 성공하겠다는 어머니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이 그리스를 점령했다. “가족은 굶주렸다. 학업을 계속하면서도 칼라스는 식량을 구하러 나서야만 했다.” 훗날 신문기사는 이 시절을 이렇게 썼다. 칼라스는 기회를 잡기 위해 미국으로 이탈리아로 대서양을 건너다녔지만 일은 풀리지 않았다. 힘든 시절이 길었다.

고운 목소리도 아니었다. “금속성 소리”라는 평도 들었다. 그럴수록 칼라스는 연습에 매달렸다. 가장 일찍 나와서 가장 늦게까지 연습했다.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은 말한다. “듣기 편한 목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아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목소리다. 마리아 칼라스는 날것의 진정성을 가지고 노래했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 있을 때 우연히 기회가 왔다. 갑자기 맡은 역할도 칼라스는 척척 해냈다. 쉴 새 없이 연습해둔 덕분이다. 1949년 주연배우가 아파 공연 엿새 전 대역을 맡기도 했다. “일주일 뒤에 오페라 <청교도>를 연기해주게.”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은 말했다. “내가 보증하지. 자네는 할 수 있어.” 공연은 크게 성공했다. 스타 탄생이었다.

성공 이후 불행한 삶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어머니에게 배신당했다. 남편하고는 헤어졌다. 자수성가한 기업인 아리스토텔리스 오나시스를 사랑했지만, 오나시스는 결혼 상대로 재클린 케네디를 택했다. 쉴 새 없는 공연 일정에 칼라스는 목소리와 건강을 해쳤다. 휴식을 권하는 주치의에게 서글프게 대답했다. “마리아 칼라스는 공연 한번을 쉴 자유가 없는 사람이랍니다.” 1977년 9월16일 세상을 떠났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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