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8월15일 독립기념일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전명윤의 환상타파 | 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언젠가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도 한때 식민지였단 이야기를 하자 그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제3세계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은 꽤 잘사는 나라였다고 알고 있었기에, 한국이 그의 나라와 똑같이 식민지를 경험했고, 비슷한 시기에 독립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지구상에는 2차 세계대전 직후, 그리고 그 이후 바뀐 세계질서의 와중에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한 나라들이 많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독립한 나라 중에도 일본군 철군일인 9월2일을 독립기념일로 삼는 베트남 같은 나라도 있고, 해방 직후 독립선언일인 8월17일을 기점으로 삼는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도 있다. 한국은 일본 패망일인 8월15일을 기점으로 삼고 있는데, 그 덕에 독립기념일 자체는 주변에서 가장 빠른 편. 확실히 성격이 급하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나라가 이즈음 앞서거니 뒤서거니 독립을 쟁취했다. 같은 8월15일을 독립 기점으로 삼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도, 콩고공화국, 바레인, 리히텐슈타인 등 6개국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 재편기까지 더하면, 그러니까 1945년 8월부터 15년 이내에 독립한 나라는 남북한을 포함해 모두 43개국에 이른다. 현재 유엔 회원국인 193개국의 22%가량이 우리와 비슷하게 식민지였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위에서 말한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는 한국이 식민지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한국과 일본은 원래부터 아시아에서 상당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던 부자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이 그의 나라처럼 한때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일본과 한국을 분리해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가 보기에 중국은 위험천만했고, 아시아에서 그나마 뭐라도 따라 할 만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한국에서 역사적 공통점을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 때면 넌지시 한국이 과거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끔찍하게 가난한 나라였고 두번의 군사쿠데타를 겪었단 이야길 하면, 어쩜 그리 자신들의 나라와 비슷하냐며 놀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렇다면 원래 패권국이었던 일본보다 한국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더 잘 알겠네?” “그렇지. 우리는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그 와중에 우리가 조금 더 운이 좋았으니까. 한국이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매년 8·15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한다. 매번 대통령은 멋진 한복을 입고 나와 해방의 벅참을 역설한다. 행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화려해지지만, 8·15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항상 고정돼 있다. 식민지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 여기까지 온 유일무이한 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일이라는 확장성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그저 한국이 한때 식민지였다는 명제만으로도 한국을 다시 볼 아시아의 친구들은 많다. 그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작은 공통의 역사, 같은 서사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걸 놓치고 있다.
그들만큼이나 우리도 그들에 관해 무지한 건 부정할 수 없다. 그저 한국에 돈 벌러 왔을 뿐이라 생각하는 외국인 노동자로부터 그들의 8·15를, 그들의 독립투쟁을 듣고 그날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무얼 했는지, 그들에게 독립기념일은 어떤 의미인지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은 8월15일이어도 좋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언젠가 8·15 기념식날 대통령만 무게 잡고 연단에 오르지 않고, 아시아 사람들이 겪은 각자의 해방을 이야기하며 기념할 수 있다면. 그쯤 상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한때의 식민지배국을 진정으로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이 추구했던 패권적 아시아주의를 한국식으로 변주해 상호 우애와 존중을 만들어낼 때 말이다. 그저 예쁜 꿈만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