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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핵관 쳐낸 자리를 김건희가 메운다면 [박찬수 칼럼]

등록 2022-09-07 15:53수정 2022-09-08 12:04

권력에 공백이란 없다. 누군가 밀려나면 누군가 그 자리를 메운다. 인사 쇄신의 칼바람 속에서도 무풍지대는 바로 김건희 여사다. 오히려 인사 공백을 타고서 그의 영향력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김 여사는 윤핵관들처럼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의 단순한 일등공신이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처럼 보인다.
스페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6월27일 서울공항을 출발한 공군 1호기에서 자료를 검토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부인 김건희 여사가 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스페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6월27일 서울공항을 출발한 공군 1호기에서 자료를 검토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부인 김건희 여사가 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박찬수 | 대기자

지금 대통령실은 ‘인사 쇄신’이란 명목의 피바람에 휩싸여 있다. 윤핵관, 그중에서도 당선자 비서실장을 지낸 장제원 의원이 밀어 넣은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줄지어 밀려나고, 휴대폰 포렌식을 포함한 고강도 감찰이 광범위하게 진행 중이다. 비서관 4명을 포함해 20여명이 대통령실을 떠난 데 이어 이번주에 또다시 20여명의 행정관이 사직 권고를 받았다고 한다. 국민의힘 비대위 재출범과 맞물린 대통령실 개편은 여권의 권력 지형 변화로까지 이어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변화무쌍한 권력의 폭풍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김건희 여사는 여전히 ‘언터처블’이라고 여권 인사들은 말한다.

취임 100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급격히 가라앉은 데엔, ‘윤핵관 리스크’와 ‘김건희 리스크’ 탓이 컸다. 이준석 대표를 쫓아내려 내부 권력투쟁의 불을 댕겼다 집 전체를 태워버릴 뻔한 게 윤핵관들이다. 정치 경험이 짧아 당 운영을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윤핵관들에게 온전히 맡겼던 윤석열 대통령으로선 몹시 실망스러운 일이었을 터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에서 잇따라 터진 정보 유출과 판단 착오가 윤핵관 추천 인사들로부터 비롯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 윤 대통령의 선택은 매서울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믿어온 검찰 출신을 앞세워 윤핵관 추천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을 내치는 것, 이것이 지금 인사 쇄신의 본질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대통령실의 역량을 높일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이걸로는 또다른 뇌관인 ‘김건희 리스크’를 제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인사 공백을 타고서 김 여사의 영향력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정권 초기에 인사는 윤핵관들이 거의 독점했기에, 대통령실에서 김 여사 라인이라고 할 만한 이는 비서관 한두명과 행정관 여럿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제 윤핵관 쪽 어공들을 밀어낸 자리는 ‘늘공’(늘 공무원인 관료들)과 또다른 어공들이 차지할 것이다. 이들은 원하는 자리에 오래 있기 위해선 누구한테 잘 보이는 게 중요한지 분명하게 안다. 윤핵관들은 대통령의 신임을 크게 잃었지만, 김 여사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굳건한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권력에 공백이란 없다. 누군가 밀려나면 누군가 그 자리를 메운다. 인사 쇄신의 칼바람 속에서도 무풍지대는 바로 김 여사다. 그는 윤핵관들처럼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의 단순한 일등공신이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처럼 보인다.

김 여사에겐 수많은 의혹과 논란이 공개적으로 제기돼 있다. 부실 논문 논란부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대통령 관저 공사를 사적으로 지인에게 맡긴 문제, 고가의 보석류 장신구를 빌린 경위, 대통령 취임식에 자기가 관련된 사건 담당 경찰관을 초청한 이유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 부인은 그냥 가족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바로 그 가족에 관한 일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게 지금 여권의 현실이다.

1997년 네번째 대선 도전에 나선 김대중 후보는 텔레비전 토론을 앞두고 서울의 한 호텔에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리허설을 여러 차례 했다. 그때 가장 뼈아픈 질문 중 하나가 전남 목포에서 아버지 후광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아들 김홍일 의원 문제였다. 국회의원과 핵심 참모 여럿이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아들을 정계에서 은퇴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김 후보는 ‘나 때문에 모진 고문을 받은 아들에게 또다시 희생하라고 말할 수 없다’며 거부했고, 실제 토론에서도 그런 취지로 답변했다. 절체절명의 선거를 눈앞에 둔 대통령 후보가 그 정도인데, 하물며 집권 초기의 현직 대통령에게 부인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대통령실에서 김 여사 문제를 윤 대통령 부부에게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홍보수석실은 김 여사가 고가의 장신구를 지인에게서 빌렸다는 것 외엔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는다. 어떤 관계의 지인인지, 한번만 빌린 건지 아니면 일정 기간 빌려 쓰는 건지, 국민이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한 답은 빠져 있다. 본인에게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기에 어느 누구도 정확한 경위를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세 아들의 비리 의혹으로 몹시 고생한 건 세상이 다 아는 바다. 이런 식으로 김 여사 논란을 덮고 가다가는 정권의 시야가 온통 ‘김건희 먹구름’으로 뒤덮일 날이 머지않은 듯싶다.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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