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4일 동물단체와 ‘침팬지 광복 관순이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관순이의 체험 동물원 반출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어웨어 제공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동물이라고 하면 한때는 어린이들과 연관된 단어였다. 누구나 어렸을 때 좋아하는 무엇, 그러나 그 이후로는 결국 졸업하게 되는 어떤 것. 논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관찰하고 채집하고, 동물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동물 만화를 즐겼다. 뭔가에 동물무늬가 있다고 하면 당연히 성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동물은 사회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확실히 속했다.
지금도 그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동물의 세계와 동물에 관한 이슈는 사회의 주변부에 놓여 있다고 하는 것이 옳다. 인간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 경제, 사회 이슈와 경쟁관계에 놓이는 순간 동물은 여지없이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대상이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와 상황이 똑같지도 않다. 아직 주류에 편입되지는 않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동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대부분 어른이다.
한국 7가구 중 1가구가 키운다는 반려동물 문화, 각종 동물학대 관행에 관한 반발여론 확산, 공장식 축산에 대한 비판 및 비건 인구 증가, 반달가슴곰 복원 및 돌고래 방류 등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 증대 등 동물 이슈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동물이 명실공히 어른들의 단어가 된 것이다.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 몇달간 이슈가 됐던 서울대공원 침팬지 반출 문제다. 서울대공원이 사육 중인 침팬지 광복이, 관순이를 인도네시아에 있는 타만 사파리라는 시설로 반출하려 한다는 사실이 지난 3월께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아무도 처음엔 이게 큰 문제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5월부터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서울시청 앞에서 매주 반출 반대 집회를 열면서 이 이슈는 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현장과 미디어에서 오간 옥신각신 끝에 결국 전문가 토론회가 제안됐고, 필자는 동물단체 추천 몫으로 8월 둘째 주에 열리기로 한 이 행사에 참여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토론회는 결국 열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당일 반출 방침이 철회됐기 때문이다. 반출 철회의 사유는 동물 이송을 담당한 중개업체가 2019년 맺었던 동물교환계약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서울대공원 쪽 설명이다. 애초에 대공원 쪽이 반출 이유로 내걸었던 종 보전과 동물복지 이야기는 쑥 들어간 상태로 말이다. 시민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인정도 물론 없이, 그저 행정적인 또는 기술적인 사항으로 치부하려 한 것이다.
원래 반출지였던 타만 사파리는 이미 동물 학대 논란으로 수차례 비판을 받아온 곳. 이곳에 침팬지를 보내면서 보전을 운운하는 것 자체는 처음부터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어떤 동물 종의 개체 간 교배를 그 종을 ‘보전’하는 것이라고 우기는 억지 논리는 그야말로 보전을 욕되게 하는 처사다. 보전은 실제 서식지의 야생 개체군을 존속시키는 것과 어떻게든 연관된 것이다. 단순 혈통관리는 보전이 아니다. 동물원 내에서 멸종위기 동물을 사육 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보전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런 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웬만한 모든 동물원은 다 보전시설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더 중요한 점은, 동물원이 동물을 마음대로 이리저리 옮긴다는 사실이 발각됐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사회가 더는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동물원 자체에 대한 비판의식이 계속 높아지는 가운데, 동물원의 동물 반출·반입 관행은 더더욱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있는 동물이나 잘 관리하고, 불필요하게 번식시켜 수를 늘리지 말고, 자기 동물은 끝까지 책임지는 것. 그것이 국민이 동물원에 요구하는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