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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흑인 투표권 차별 말라” 셀마행진 이끌다 경찰 곤봉에 쓰러지다

등록 2022-08-25 17:53수정 2022-08-26 02:40

[나는 역사다] 어밀리아 보인턴 로빈슨(1911~2015)

19세기 미국. 남북전쟁은 끝났지만 흑인 차별은 여전했다. 흑백분리 정책이 시행됐다. 흑인과 백인은 학교도 함께 다닐 수 없었고 공공시설도 따로 이용해야 했다. 1896년 흑인을 백인 객차에 타지 못하게 해도 차별이 아니라는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분리돼 있지만 평등하다”는 취지였다나. 흑인은 선거권도 제한됐다. 이것이 그 시절 미국식 ‘공정’이었다.

흑인들은 대를 이어 저항했다. 뜻을 같이하는 백인도 함께했다. 1965년 3월 셀마 행진. 시위대는 미국 남부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평화행진을 시도했다. 백인들이 다스리던 앨라배마 주정부는 폭력으로 진압했다. 인권운동가 어밀리아 보인턴 로빈슨은 시위에 앞장섰다가 경찰의 곤봉에 머리를 맞고 의식을 잃었다. 쓰러진 그의 모습이 미국 곳곳에 보도됐다. 2차 행진 때도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폭력으로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전국적인 흑인 시위로 번지자 연방정부는 세번째 행진 때 연방군을 파견해 행진하는 시위대를 보호해줬다. 8월 린든 존슨 대통령이 흑인의 투표권을 보호하는 법률에 서명했다(흑백분리를 금지하는 법안은 1964년에 이미 통과됐다). 이렇게 하여 흑인을 차별하는 법은 폐지됐다, 제도적으로는.

경찰의 과잉 진압과 백인우월주의자의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여럿 있었으나 어밀리아 보인턴 로빈슨은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았다. 셀마 항쟁의 아이콘이자 미국 인권운동의 원로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 2015년 3월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행진 50주년을 기념하기도 했다. 그해 8월26일에 세상을 떠났다. 104살이라는 많은 나이였다.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옛 법은 ‘짐 크로 법’이라 불렸다. 짐 크로는 미국에서 흑인을 얕잡아 부르던 말이다. 옛날 희극의 배역 이름이었는데, 백인 희극인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무대에 올랐단다(얼굴에 검은 칠 하고 흑인을 흉내 내는 일이 아직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법률은 폐지됐지만 차별은 남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여러 정책이 짐 크로 법의 부활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셀마 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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