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새 정부 출범 뒤 110일이 돼간다. 그간 대통령 지지율이 20% 중반대로 떨어지면서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최근 지지율이 다소 반등하면서 정책기획수석 신설과 홍보수석 교체 등 일부 보강에 그쳤다. 내각은 아직 미완성인 채다. 인사 문제가 계속해서 지지율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한국은 인사에 대한 민감도가 매우 높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 인사가 혹평을 받고 있다. 수월성을 강조하면서 전문성을 무시했고, 통합을 말하면서 검찰과 경제관료 편중이 심했으며, 무엇보다 사적 인연을 중시해 공사가 불분명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새 정부가 국정철학으로 내세운 ‘공정과 상식’은 사라지고 비이성적이고 후진적인 인사 관행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들을 세가지로 구분해 살펴본다.
첫째는 지나친 엘리트 선호다. 우리 사회는 인재를 평가하면서 공부 잘하는 걸 높게 친다. 사람을 시험으로 구분하고 등수를 매기는 데 익숙하다. 그렇다 보니 인성과 개성 등 정작 중요한 인적 자질이 경시되고 선진화 과정에서 요구되는 창의성, 포용력, 균형감각 등은 저평가된다. 이러한 지나친 엘리트 선호가 순혈주의라는 우리 사회 전통적 가치와 맞물려 편중 인사를 불렀다. 인재를 찾다 보니 서울대 출신이고, 검사고, 관료라는 것이다.
미국 대학은 교수 채용 때 본교 출신을 우대하지 않는 것을 전통으로 유지한다. 본교 출신을 교수로 받아들여 이른바 동종교배(inbreeding)가 관행으로 정착하면 외부의 학문적 영향이 차단돼 학문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둘째는 검찰과 관료 집단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다. 우선 대통령 측근인 검찰 출신들이 대통령실과 정부 요직을 대거 차지해 권력의 핵심을 구성했다.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자리에 검찰 출신이 5명이고, 총무비서관과 부속실장도 검찰 출신을 발탁했다. 대통령실과 검찰을 검사동일체로 만든 셈이다.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관피아(관료+마피아)들을 정부 주요 보직에 배치해 실세 검찰을 보완하게 했다. 문제는 검찰과 관료 모두가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해온 집단이라는 점이다. 비록 과거 한국 경제 성장과 비리 척결 과정에서 관료와 검찰의 기여가 일부 인정된다고 해도, 권위주의와 기득권 사수 마인드가 강한 이들이 대통령이 얘기한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혁신의 나라’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실 요직에의 검찰 출신 발탁과 정부 부처 요직에 관피아 또는 모피아(재경부 관료+마피아) 전면 배치는 그간 국가행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바다. 검찰과 관료가 서로 협력해 강력한 통제체제를 만들거나, 서로 갈등하면서 견제하는 경우 어느 쪽도 민간인 등용이나 새 정부가 추구하는 ‘민간 중심 국가’에 기여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요즘 검찰 파워를 등에 업고 모피아가 전성시대를 구가한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은 첫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제수석 그리고 정부 쪽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국무조정실장 등이 모두 모피아 출신이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보건복지부 1차관 그리고 관세청장과 조달청장, 통계청장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이 차지했다. 전례 없는 모피아 전성시대다.
관료들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지만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는다. 비근한 예가 최근 사모펀드 사태고, 결론이 임박한 론스타 사건에서도 관료의 역할이 중요했다. 또한 이들은 재임 중 누렸던 권한을 퇴임 뒤에도 지속하려는데, ‘낙하산’과 ‘회전문 인사’가 그 수단이다. 퇴임 관료가 산하 공공기관 또는 민간조직의 고위직에 안착하는 낙하산이나 민간인 신분으로 대형로펌 등을 돌다가 공직에 복귀하는 회전문 인사 모두 새 정부가 추구하는 ‘민간 중심 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낙하산의 폐해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우선 낙하산은 부임하면 전임자 흔적 지우기에 나서는데, 이런 행태가 되풀이되면서 직원들은 단기 성과에 매몰되고 한탕주의에 빠져 사고 발생 위험이 커진다. 직원들 사기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평생직장으로 알고 들어와 열심히 일했는데 알고 보니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그 위로는 올라갈 수 없다면, 업무에 열정을 불태우기보다 무사안일에 빠지거나 실세 줄대기에 신경을 쓰게 돼 업무가 부실화할 위험이 커진다. 한편 회전문 인사는 전관예우 문제로도 이어진다. 관직을 물러난 전관이 후일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현직들로서는 예우를 소홀히 하기 어렵고 따라서 공사 구분이 흐려지게 된다.
셋째는 공사 구분이 불분명한 것이다. 우리 국민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성향이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겐 뻣뻣하나, 일단 통성명하면 금세 살가워진다. 관계를 중시하는 것인데, 좋은 관계가 맺어지면 원칙에 좀 어긋나도 그럭저럭 넘어가려는 경우가 많다.
사람 사이 관계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공사 구분은 필요하다. 예컨대 금융이론에서는 관계형 금융을 장려한다. 은행과 고객이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건전한 상생 관계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만 이는 사적 계약의 경우이며, 대통령실이나 국회 등 공적 부문에서는 허용 범위를 제한하는 게 상식이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집권하더니 대통령실 사적 채용, 관저 사적 공사, 공무 여행 때 지인 동반 등 사적 관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할까?
지난 18일 대통령실은 인사와 관련해 전면 쇄신보다 점진적 변화를 내걸었다. 사실 어느 쪽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인사가 만사라는데, 몇가지를 제안해 본다.
우선, 어차피 새 정부는 전 정부의 성과 위에 자신의 성과를 쌓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 정부의 정책방향을 되돌리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오히려 한국 경제와 사회의 선진화를 위해 진영 구분 없이 소신을 지닌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을 삼고초려해 모셔와 정책의 정반합을 이뤄내야 한다.
다음, 낙하산과 회전문 인사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과거 국회에서 논의됐던 ‘낙하산 금지법’ 재추진을 고려할 수도 있겠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관료제 대안 마련도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적 채용과 인맥 인사는 중단해야 한다. 공직자가 의리와 인연을 중시하는 것은 사적 이득을 취하는 것과 같아 공익에 반할 소지가 크다. 공직자의 직무적합성을 나타내는 긍정적 기준과 사적 인연이나 친분관계 등을 나타내는 부정적 기준을 시행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첫 단추는 잘못 끼웠지만, 이제라도 새 정부가 다양한 인재들로 역동적 정책을 시행하여 성과를 도출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