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연말 시사주간지 <시사인>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가 보낸 편지였다. 봉투 안에는 현금 4만7천원이 들어 있었다.
“해고 노동자에게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입니다. 47억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천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법원이 쌍용자동차와 경찰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46억8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는 기사를 보고 보낸 편지였다. 큰아이 태권도학원비를 아껴 마련한 4만7천원은 손배·가압류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노란봉투 캠페인’의 마중물이 됐다. 캠페인 이름은 예전 월급봉투가 노란색이었다는 데서 착안했다고 한다.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한 세 차례 모금 캠페인에 4만7천여명이 참여해 14억6천여만원이 모였다. 이렇게 모인 돈은 누군가의 ‘노란봉투’가 됐다.
모금 캠페인은 ‘노란봉투법’ 입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운동으로 이어졌다. 캠페인 과정에서 설립된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중심이 됐다. 1년 간의 준비를 거쳐 2015년 4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34명이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노조법상 손해배상 책임이 면제되는 ‘합법’ 파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 개인에게는 손배를 청구하지 못하게 한 것이 뼈대다. 그러나 이 법은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1대 국회에는 4건(민주당 3건, 정의당 1건)의 노란봉투법이 발의돼 있다.
‘손잡고’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손잡고’에 보낸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남용은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는 부당한 처사입니다. (중략) 새정치민주연합은 시민들의 맞잡은 손을 이어받아 노조법 개정안 노란봉투법을 관철시켜낼 것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노란봉투법 입법은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손잡고’ 집계를 보면, 지금까지 노동자에게 제기된 손배 청구액은 확인된 것만 3160억원에 이른다. 대우조선해양도 최근 파업을 벌인 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470억원의 손배소를 내기로 했다.
이종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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