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1929~1977)
미국 공군 정찰기 U2는 높이 날았다. 어찌나 높이 나는지 지대공미사일이 한동안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U2는 소련 상공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미국 정보부에 보낼 사진을 찍었다.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는 U2 고참 조종사였다.
1960년 5월1일 사달이 났다. 벼르고 벼르던 소련군이 새로 만든 미사일을 날려 U2를 쏘아 맞힌 것이다. 영공 침범 사실을 미국 정부가 잡아떼자 소련 정부는 “파워스가 낙하산을 타고 탈출해 살아남았으며 소련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냉전시절 ‘U2기 사건’이다.
미국 대중의 분노는 파워스를 향했다. 어쩌면 자기 나라에 대한 실망감을 그런 식으로 드러냈을지 모른다. 파워스는 소련 감옥에 갇힌 채 미국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U2와 함께 자폭해야 했다느니 독약으로 자살해야 했다느니, 쉽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 사람의 생명을 놓고 여러 사람이 속없이 말을 얹었다.
내 생각은 다르다. 한때 대의를 위해 개인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치사한 짓 따위는 저지르지 않는 나라”라는 거짓 믿음을 지켜주기 위해 개인이 죽어야 할까?
그해 8월 파워스의 재판이 열렸다. “재판이 열리기 전 소련에서도 파워스에 대한 여론이 나빴다. (하지만) 재판이 끝난 뒤 소련 사람들은 파워스가 단지 도구로 이용되었을 뿐이며 사람이 나쁜 친구는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재판을 본 영국 기자의 말이다. 파워스는 8월19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1년 반 뒤 미국 정부에 붙들린 소련 스파이와 맞교환돼 풀려났다.
“아버지는 미국에 돌아와 충격을 받았어요. 당신이 소련 감옥에 있을 때 나온 미국 신문들을 보고서였죠.” 아들의 회고다. ‘죽었어야 할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모욕을 받으면서도 파워스는 살아남았다. 훗날 방송사의 헬리콥터 조종사로 일하다, 1977년 산불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여론과 달리 미국 정부는 시종일관 파워스를 전쟁영웅으로 대접했다. 미국 정부는 2012년 그에게 은성훈장을 추서했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