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신영전 칼럼] “당신은 곧 늙고, 죽을 것이다”

등록 2022-07-26 18:13수정 2022-07-27 02:37

민주화 세대의 실패가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라면, ‘서로 돌봄’이야말로 새로운 세대가 선택해야 할 시대언명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이 빠른 고령화가 시작됐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정책의 우선순위를 빠르게 돌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합원들이 지난달 18일 오후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출범을 알리며 ‘돌봄 국가’라고 쓴 피켓을 들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합원들이 지난달 18일 오후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출범을 알리며 ‘돌봄 국가’라고 쓴 피켓을 들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영전

시인 김수영이 마지막으로 번역한 뮤리얼 스파크의 소설 <메멘토 모리>는 “죽을 운명을 잊지 마라”는 말만 하고 끊는 정체불명의 전화를 반복적으로 받은 노인들이 각자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노년의 복잡한 심리를 그리고 있다.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 유행, 혐오의 확대, 노동자의 생존투쟁, 물가 상승과 경제위기 뉴스, 남북관계 악화, 전쟁과 기후위기, 무엇보다 국민에게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 이것이 2022년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는 길을 잃었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그때그때마다 우리의 갈 길은 분명했다. 잃어버린 조국을 찾아야 했고, 전쟁에서 살아남아 폐허가 된 나라를 복구해야 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불렀고, 경제성장과 함께 이 땅에 민주주의를 자리잡게 해야 했다. 이 중 이뤄낸 것도 있고, 더 달려가야 할 목표도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현재의 시대언명으로는 낡았다. 한 국가나 개인이 갈 길을 잃었을 때, 귀신같이 알고 찾아오는 것은 허무, 혐오, 부패다. 영원히 해가 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제국들의 종말도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 길을 잃었을 땐 처음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고 이 시점 가장 명징한 출발 언명은 바로 이것이다. “당신은 곧 늙고, 죽을 것이다.” 이것은 지난 100년간 한국 사회가 한번도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았던 언명이다. 서민이나 권세가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왔고 그렇게 살기를 강요받았다. 그러나 내가 죽듯, 윤석열 대통령도, 이재명 의원도, 윤핵관이라는 권세가들도 죽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당신의 부모, 배우자, 자식들도 늙고 죽을 것이다. 당신의 큰 비석이나 재산은 적어도 당신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고, 한 시인의 노래처럼 “(당신의) 꽃상여 고샅 돌아 산길 오르기도 전에” 출근길 지하철은 어제처럼 붐빌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의 후회는 수많은 책 속에 있고 인터넷 바다 위에도 무수히 떠 있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우리가 지난 100년간 추구했던 돈, 명예, 권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삶을 살게 된다면 그들이 원했던 것은 ‘소박한 연민 공동체’ 속에서 살다 가는 것이었다. 여기서의 ‘연민’은 오스트리아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말한 ‘약한 연민’과 ‘강한 연민’ 중 후자를 말한다. 나약한 감상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행동이다. 이것의 다른 이름은 ‘서로 돌봄’이다. ‘돌봄’이란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말처럼, 과거처럼 가족이 떠맡는 돌봄이 아니라 공동체, 국가, 전지구적 단위가 서로 차별 없이 돌보는 것을 뜻한다. 영국 학자 안드레아스 하지다키스와 동료들은 이 돌봄이 시장화와 민영화를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와는 공존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돌봄의 부재’, 즉 ‘무관심’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많은 나라가 수익 창출을 앞세워 복지제도와 민주적 절차를 파괴했고, 기업들은 ‘셀프케어’를 내세워 ‘돌봄’을 개인이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상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돌봄’을, 길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전 인류의 새로운 나침판이자 ‘시대언명’으로 삼자는 것은 사실 혁명적 주장이다. 경쟁과 우승열패의 신화를 버리고, 우리 모두의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독립운동, 민주화운동보다 더 힘든 노정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도 중요하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파머는 “정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민주화 세대의 실패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라면, ‘서로 돌봄’이야말로 새로운 세대가 선택해야 할 시대언명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이미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이 빠른 고령화가 시작됐다.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정책의 우선순위를 빠르게 돌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 예로 우선 모든 시·군·구 중심에 고령노인, 장애인, 영유아 등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서로 돌봄 마을’이 자리하게 하는 운동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 마을은 영리와 시장이 아닌, 영국 돌봄 관련 학자들 모임인 ‘더 케어 컬렉티브’가 제안하는 네 가지 원칙, 즉 상호연계, 공공 공간, 공유 자원, 지역민주주의하에 작동해야 한다.

철학자 니체 역시 “지금까지 인류에게 널리 퍼져 있던 저주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였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돌봄이야말로 인류의 저주를 푸는 해독제인 셈이다. 하여 이쯤에서 다시 명토 박자. “당신은 곧 늙고, 죽을 것이다.”

한양대 의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1.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전쟁이 온다” [신영전 칼럼] 2.

“전쟁이 온다” [신영전 칼럼]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3.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사설] 윤 대통령 쇄신 요구 봇물, 7일 회견 똑같다면 화 키운다 4.

[사설] 윤 대통령 쇄신 요구 봇물, 7일 회견 똑같다면 화 키운다

서가의 책을 버리는 법 [똑똑! 한국사회] 5.

서가의 책을 버리는 법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