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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우의 바람] 비발디의 사계

등록 2022-07-17 18:27수정 2022-07-18 02:37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연주곡은? 다양한 조사가 있지만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 발표된 <한국방송>(KBS) 클래식 에프엠(FM)의 설문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5위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4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3위 비발디 사계. 2위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대망의 1위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이름만 들어도 수긍이 가는 거장들의 작품이다.

비슷한 조사를 매년 하지만, 그 결과는 대동소이하다고 한다. 이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은 비발디의 사계다. 다른 곡들과 달리 (피아노가 아니라)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화무쌍한 자연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비발디. 익숙한 이름이다. 베토벤이나 쇼팽은 그저 작곡가의 이름이지만, 비발디는 생활 곳곳에서 등장한다. 아파트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바로 집 근처에 한라비발디 아파트가 있다. 리조트 이름이기도 하다. 강원도 홍천에 자리한 비발디파크. 여름철 야외수영장이나 겨울철 스키장보다는, 봄철 푸른 나무를 보기 위해 이따금 들른다.

언제부터 비발디라는 이름을 알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음악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비발디의 음악을 실제로 들어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카세트테이프로 들었다. 그러나 한 면을 채 듣지 못했다. 클래식보다는 팝송을 훨씬 좋아했던 탓이다.

비발디를 다시 찾게 된 것은 버네사 메이 때문이었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갈색 피부의 바이올리니스트. 1997년, 아이돌 그룹 에이치오티(HOT)와 젝스키스가 가요계를 평정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작은 체구의 동양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지상파 음악방송에 등장했다. 생전 처음 보는 흰색의 전자 바이올린을 들고. 그녀는 짧은 시간에 클래식에 대한 편견을 무참히 깨뜨려 버렸다. 곡 제목 ‘스톰’처럼 폭풍우 몰아치듯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클래식이라기보다는 록에 훨씬 가까웠다. 굳이 평론가들의 분류를 따르자면 테크노-어쿠스틱 음악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곡이 바로크 음악의 거장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을 샘플링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비발디의 여름 3악장을 다시 듣게 됐다. 봄 1악장과 가을 1악장의 상쾌함과 달리 역동적이어서 좋았다. 겨울 2악장의 고즈넉함과 대비돼서도 좋았다.

흥미롭게도 비발디의 사계에는 짧은 시가 붙어 있다. 비발디가 썼다는 설도 있지만 누가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여름에 대한 시는 다음과 같다. 여러 번역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버전이다. ‘(1악장) 무자비한 여름 태양 아래 사람도 짐승도 늘어진다. 소나무는 불타고 뻐꾸기 울기 시작하니 산비둘기와 황금 방울새가 뒤따른다. (2악장) 산들바람에 맞서 북풍이 시비를 걸어온다. 양치기는 자신의 불운과 갑작스러운 폭풍에 두려워 훌쩍인다. (3악장) 그의 고된 팔다리는 천둥 번개에 놀란 파리와 호박벌에 시달려 휴식을 잃은 지 오래다. 아, 그의 공포가 얼마나 잘 들어맞았던지 천둥, 번개, 우박이 잘 여문 옥수수 이삭을 다 떨궈 버렸네.’

집 안 어딘가 오래된 카세트테이프가 있을지 모르겠다. 중학교 졸업 선물로 부모님이 사주셨던 ‘아이와’ 카세트 플레이어,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된 소니 워크맨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 만약 카세트테이프를 찾지 못한다면 시디(CD)로 들어야겠다. 1997년 발매된 앨범은 없지만 버네사 메이 베스트컬렉션 시디는 여전히 사무실 한편에 꽂혀 있다. 티볼리 모델2의 우퍼 볼륨을 최대치로 올리면 ‘스톰’의 강렬함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여름 스톰이 지나간 자리 맑고 시원한 하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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