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세대가 청소·경비 노동자 처우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서명을 한 명단이 담긴 게시물이 세워져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이른바 ‘명문대’에서 교양과목을 담당하는 교수가 특강을 부탁하며 말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좋은 학점으로 졸업해 대기업 정규직이 되거나 코인·주식·부동산으로 쉽게 돈 벌 생각만 하는 청년들이 앞에 있다고 예상하시고 강의를 준비하시면 맞을 겁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설마 그러려니 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분위기는 최소한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교정을 걷다 보면 “하종강 교수도 감이 많이 떨어지고 개량화됐다”는 학생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때가 많다. 그 학생들이 거의 매일 연대하는 투쟁 현장에 결합하는 횟수가 현저히 적은 나는 어쩌다 그 학생들과 마주칠 때마다 자격지심에 시달린다.
얼굴에 ‘공부 잘함’이라고 써 붙인 것 같은 인상의 그 명문대 학생들의 분위기는 정말 그랬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려면 어떠한 준비와 자세가 필요한가?” 정도의 고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입히며 살지는 말자” 수준의 고민조차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생각인 것처럼 치부하는 느낌을 받았다.
내 지식의 깊이가 얕은 탓이겠지만 그 청년들이 나중에 대기업 정규직이 됐을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함께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관심이라도 갖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자평했다.
연세대에서 시급 400원 인상과 샤워실 설치를 요구하며 점심시간에 집회를 연 청소노동자들을 학생들이 업무방해로 형사고소하고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세태의 반영이다. 인간의 신체를 파괴할 정도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지 말라고 주 40시간제(최대 52시간제)가 만들어졌고,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일하기를 원하는 노동자가 행여 있더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최저임금제가 만들어졌거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도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너무 쉽게 말하는 판국 아닌가. 헌법에서 집회·시위의 자유와 파업권을 규정한 것은 한편에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권리 행사를 참고 견뎌야 할 의무를 부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운 적 없는 청년들이 그러한 세태에 고무받아 자신의 권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는 행위를 한 것은 어찌 보면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잠시 퇴행하는 상황에서 “언젠가 올 것이 온 것”뿐이다.
요즘 강의를 마친 뒤 받는 질문들 중에는 이런 절망적 상황 속에서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내용이 많다. 신기한 것은 그러한 질문을 하며 고뇌하는 ‘희망의 씨앗’들이 여전히 전국 방방곡곡 많이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정규직 활동가들이 있고,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청년들이 있고, 노동교육을 조금이라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있고, 임승수 작가의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책을 읽으며 찬반토론을 벌이는 청소년들도 있다.
지난 금요일 저녁 경남 통영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난 뒤 심야버스로 올라와, 잠도 자지 못한 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주관하는 ‘의대생 캠프’에 참여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돈벌이와 무관하게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하는 의대생들이 얼마나 있으랴 싶었지만 적지 않은 수가 모였다. 준비해 간 강의를 진행하며 아차 싶었다. 강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나름 유머라고 곳곳에 배치한 내용들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있어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지식을 쏟아부어야 할 사람들에게 주제와 별로 관계없는 내용들을 유머랍시고 허비한 것이 후회스럽고 창피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노회찬재단에서 준비한 4주기 추모연극 <산재일기>를 관람하러 전태일기념관에 갔다. 재단 관계자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청년이 다가와 꾸벅 인사한다. “어제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강의 내용 매우 좋았어요.” 자세히 보니 기억나는 얼굴이다. “질문했던 의대생이죠?” “네.” 재단 관계자는 “세상에 태어나 의대생 두번째로 본다”면서 까르르 웃는다. 노동재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의대생이라니…. 지금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역사란 그 소수의 주장이 조금씩 실현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깨달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