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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90년 만의 총리 암살/박민희

등록 2022-07-10 14:38수정 2022-07-11 15:04

1932년 5월15일, 이누카이 쓰요시 일본 총리가 관저에서 우익 청년장교들에게 암살당한 것은 역사의 분수령이었다.

이누카이의 죽음은 관동군이 중국 동북지역에 세운 괴뢰정부인 만주국과 관련되어 있었다. 일본 군부와 우익 세력은 처음에는 조선을, 이후에는 만주를 일본의 안보를 지켜줄 ‘생명선’이라 주장했다. 만주의 ‘특수이익’을 확보해야 후발 제국주의 일본의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 1931년 9월18일 일본군은 랴오닝성 선양 근처 철도 옆에 폭탄을 투하하는 자작극을 벌인 뒤 중국군의 소행으로 꾸몄다. 6개월 만에 관동군은 만주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중국이 국제연맹에 호소하고 조사단이 만주에 파견되자, 일본 내에선 일본이 억울하게 비난을 당하고 있다는 선전·선동이 거세졌다.

당시 민간인 출신 일본 총리들은 군이 일본을 전쟁으로 몰아간다고 우려했으나 군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1931년 말 총리가 된 이누카이 쓰요시는 만주국을 ‘독립국’으로 공식 선포하는 것을 보류하려 했으나 허사였다. 일본 해군이 상하이의 중국군을 공격하자, 이누카이는 천황이 관여해주기를 탄원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누카이는 관저에 난입한 우익 장교들을 대화로 설득하려 했지만 총탄을 맞고 숨졌다. 이누카이 총리 암살로 정당 내각 체제가 무너지고, 일본은 군인 총리들이 통치하는 시대로 나아갔다. 대공황에 이은 불안이 세계를 휩쓸며 중산층이 무너지고 농민들은 극심한 빈곤에 빠졌다. 민주주의의 기반은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1933년)했고, 파시즘과 군국주의가 세계를 휩쓸었다.

1936년 2월26일 새벽, 기득권 세력을 척결하고 천황근본주의 체제를 세우자고 주장한 ‘황도파’ 하급 장교 1400명이 일으킨 쿠데타에서 사이토 마코토 내대신(전 총리) 등이 살해되었으나, 오카다 게이스케 총리는 매부가 대신 살해되면서 목숨을 건졌다. 이듬해인 1937년 일본은 중일전쟁으로 나아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일본에서 정치 암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60년 아사누마 이나지로 사회당 위원장이 연설 중 우익 청년의 칼에 찔려 숨졌고, 2007년 자민당의 핵보유론이나 개헌 움직임을 비판하던 가즈나 이토 나가사키 시장이 조직폭력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지난 8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사망은 전후 일본에서 최초로 벌어진 전·현직 총리 암살 사건이다. 일본 우파 정치의 상징인 그의 죽음은, 우경화에 맞서려던 정치인이 우익에 의해 암살된 이전 사건들과는 의미가 다르지만, 세계는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불안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1930년대 일본 관동군의 만주 침공과 유사한 ‘생명선’ 논리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계는 다시 민주주의의 위기, 경제적 불안에 휩싸여 있다. 아베 전 총리의 비극적 죽음을 애도하는 일본 사회도 다시 갈림길에 서 있다.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평화헌법 개정과 군비 증강이 아닌 더 나은 길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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