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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당신들의 차별을 허락할 순 없다

등록 2022-07-07 18:02수정 2022-07-08 02:38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 관계자들이 서울광장 사용신고에 대한 서울시 행정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 관계자들이 서울광장 사용신고에 대한 서울시 행정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지난달 15일 오전 9시, 서울시청 본관 8층에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가 열렸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조직위)가 낸 서울광장 사용신고를 승인할지 심의하는 자리였다.

“앞에 서울이라는 건 뺐으면 좋겠어요. 서울시에서 왠지 인정한 것 같고, 그냥 그들만의 문화축제로 갔으면, 저게 왜 문화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어느 위원이 불만을 터트렸다. 서울우유를 서울시청이 만든다고 착각할 수 있으니 회사명을 바꾸면 좋겠다는 말만큼이나 어이없는 발언을, 그는 두번이나 반복해 말했다. 23년째를 맞는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매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지역기반 행사이자, 풍물패와 춤, 노래와 악기 연주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 행사다. 그런데도 이름에서 ‘서울’과 ‘문화’를 빼자? 이건 둘 중 하나다. 자신이 심의할 축제에 관해 아는 게 없거나, 잘못 알고 있거나.

조직위는 광장 사용기간을 6일로 신청했는데, 위원들은 “그렇게까지 길게 쓸 건 없다”며 반을 잘라 금토일 3일로 줄였다. 그런 다음 “현실적으로 일요일날, 지금 가뜩이나 기독교 단체들이 반대를 하는데”라며 일요일을 뺐다. 남은 이틀도 과하다며 “일반 시민들하고의 나름 갈등을 최소화시키는 측면에서 기간을 조금 단축시키자”는 제안이 이어졌다. 여기서 일반 시민이란 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를 뜻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일은 토요일 하루만 남게 됐다.

이 모든 건 지난 5일 회의록이 익명으로나마 공개돼 알려질 수 있었다. 처음에 위원들은 전면 불수리 결정을 내리려 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코로나19 유행 전 마지막으로 광장을 썼던 2019년 축제에선 딱히 과다노출이나 이른바 음란물 판매 등의 문제가 없었다고 보고받았기 때문이다. 불수리할 명분이 없자 조건부 수리로 방향을 틀었다. 올해 하루는 하게 해주되, 조건을 걸고 이를 어기면 향후 광장 사용을 못 하게 하자고. 걸면 걸리게 하는 게 목표이다 보니, 정작 회의에서 조건에 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고작 “상의 탈의” 한마디 나온 게 전부다. 그러곤 투명하게 속내를 드러낸다. “만약에 이런 행위들이 정도의 문제가 아니고 있었다, 라면 책임지고 다음 수리 여부에 영향을 주는 거죠. 불수리할 수 있다, 이걸 감내하는 거로.”

노출 정도와 상관없이 노출이 있기만 하면 불수리하겠단다. 큰일이다. 상의 탈의가 과다노출의 기준이 되면 당장 금지당해야 할 축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신촌 물총축제, 보령 머드축제는 어쩌란 말인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문제지만 위원들의 노동 인식도 엉망이다. 어떻게든 광장 사용 시간을 줄이려다 보니 밤 9시 이후 밤새 무대를 설치하고, 다시 밤새 철거하면 된다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낮에 해도 되는 무대 설치를 굳이 깜깜한 밤에 하라고? 그러다 다치면? 무대 설치 노동자들의 안전은 관심 밖이다. 조직위는 서울시와 싸워서 겨우 금요일 낮 1시부터 무대 설치할 시간을 확보했다고 한다.

서울광장 사용은 무료가 아니다. 조직위는 광장 사용료도 내고 집회 신고도 하고 요구하는 모든 절차를 밟았다. 그래도 위원회에서 차별은 참 쉽게 작동한다. 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시민’, 축제 참가자는 ‘소수자’라 부르면 된다.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소수자들의 축제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절로 나온다. 서울광장의 목적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 선용과 문화활동’이니, 소수자들 축제 제한은 당연하다.

시민이 아닌 소수자가 어디에 숨어 살다가 갑자기 서울광장에 수만명씩 튀어나오기라도 하는 걸까. 소수자도 시민이다. 16일 토요일, 서울광장에서는 시민들의 축제가, 배제되길 거부하는 소수자들의 축제가 열릴 것이다. 7일부터는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퀴어퍼레이드가, 15일부터 31일까지는 퀴어영화제도 열린다. 차별을 허락하지 않을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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