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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산하의 청개구리] 숲에서 손을 뗄 때

등록 2022-07-03 17:53수정 2022-07-04 02:36

경남 밀양시 부북면 산불 발생 사흘째인 지난달 2일 오후 화재 현장의 산림이 불에 타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경남 밀양시 부북면 산불 발생 사흘째인 지난달 2일 오후 화재 현장의 산림이 불에 타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비와 습기, 햇볕 그리고 더위. 요즘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단어들일 것이다. 한여름 날씨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 하루하루를 통과하는 우리는 그야말로 미약한 존재다. 거대한 기후체계 안에서 적응하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 그저 하나의 개체로서 전체에 어떤 조그만 변화라도 일으키기란 불가능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모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 사회가 내리는 결정의 힘은 개인의 그것과는 다르다. 한 지역에 모여 사는 구성원들 전체가 그 땅에 취하는 조처는 스케일부터 커다란 차이가 나며, 이것들이 모이고 누적되면 기후와 같은 커다란 체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애초에 인류가 기후위기와 같은 문제를 일으킨 것도 같은 이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숲이 그 좋은 예다. 숲이 기후에 갖는 중요성을 생각해보라. 엄청난 양의 증발산으로 물을 순환시키고, 또 왕성한 광합성으로 탄소를 저장하는 등 숲이 기후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숲이 어떻게 존속하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우리가 숲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관건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숲을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가만 놔두긴커녕 손을 더 대지 못해서 안달일 정도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아니다. 우리 모두를 대표한다는 국가기관이 그렇다.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는 명분으로 벌어지는 숲 훼손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국가가 하는 일이다 보니 국민은 뭔가 깊은 뜻이 있겠거니 믿어주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것은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국가가 현재 숲을 대하는 방식은 실은 공동체의 바람과는 정반대 방식이다.

지난 5월 말 일어난 밀양 산불이 이를 잘 드러내준다. 소방헬기 53대나 동원되고 나서야 겨우 진화된 밀양 산불에서 한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국가기관인 산림청이 숲에 낸 길인 임도와 역시 같은 기관이 주도한 ‘숲가꾸기’ 사업 대상지를 중심으로 산불이 번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불에 타고 난 뒤 전경을 보면, 임도를 따라 숲이 가로로 새카맣게 탔음을 알 수 있다. 산불이 능선을 따라 번진 게 아니라, 중턱에 머물면서 횡으로 이동한 희한한 형태란 얘기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여러 전문가는 지적한다. 보통의 숲이라면 있어야 할 활엽수와 하층식생을 모조리 인공적으로 없애 텅 빈 공간으로 바람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불길이 삽시간에 번졌다는 설명이다. 임도 역시 바람이 이동하는 통로 구실을 해 불길이 수평으로 번지는 데 기여했다. 소나무 재선충에 대응한답시고 잘라서 장작더미처럼 여기저기에 쌓아놓은 나무들도 산불에 한몫했다. 그동안 산림청은 임도가 부족해 산불에 대응하기 어렵고, 숲의 작은 나무나 과목(과수나무)들이 산불이 났을 때 연료 역할을 하기에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번 산불에서는 그 모든 말과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소위 ‘숲가꾸기’가 더 숲을 취약하게 만든 셈이다.

산불이 난 숲을 회복하는 최고의 방법은 자연복원이라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일찍이 숲의 자연복원을 설파해온 정연숙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자연복원이 인공조림보다 더 빨리 복구되고 생태적으로 더 풍부하다고 말한다. 큰 산불이 난 지역들을 비교 연구한 결과, 자연복원지가 생물량을 더 빨리 축적해서 20년 안에 회복되더란 설명이다. 산은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잊지 말자. 산에 함부로 댄 그 손, 이제는 멀리 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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