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이 타고간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종의 기원>은 비글호 항해에서 시작됐다. 진화론의 초석이 된 이 역작은 다윈이 1831년부터 1836년까지 거의 5년간 항해에서 수집한 그리고 기록한 자료들을 토대로 1859년 발표됐다. 알려진 것과 달리, 다윈은 갈라파고스군도에서 진화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귀국 뒤 저명한 조류학자들의 의견을 듣고서 핀치새에 관한 자료를 재확인하던 중,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생각하게 됐다. 당시 한창 논의 중이던 라마르크진화론(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학설)의 영향을 받은 것도 컸다.
생물학에 혁명을 일으킨 다윈, 그의 업적은 단지 생물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윈은 생물학자가 아니라 박물학자로서 비글호에 탑승했다. 박물학, 자연을 기록하고 분류하는 학문으로 현대의 생물학, 지구과학, 그리고 우주과학을 포괄한다. 그는 임무에 충실했고, 그 결과를 <화산도의 지질학적 관찰>, <남미의 지질학적 관찰> 등 저서에 담아냈다. 이 책들은 19세기 지구과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남았다.
흥미로운 점은 다윈이 종종 기상 관측을 했다는 것이다. 기온과 습도를 측정했다. 만약 매일 측정했다면 남반구 중위도 기후 값을 추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됐을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대기 중 먼지도 수집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첫 저서 <비글호 항해기> 제1장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대기는 뿌옇게 흐려 있다. 이는 아주 미세한 먼지 때문인데 (…) 아침나절에 갈색 빛이 도는 미세한 먼지꾸러미 하나를 채집했다. 이 먼지는 바람에 묻어와 돛대 꼭대기에 있는 풍향계의 거즈에 걸러진 것”(사단법인 ‘올재’ 번역판).
왜 먼지를 수집했는지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한때 신학을 공부했던 학생으로서 성경을 염두에 뒀는지 모른다(다윈은 의대를 자퇴하고 신학과에 진학했지만 결국 박물학에 평생을 바쳤다). 창세기에는 사람이 땅의 먼지로 만들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물론 순수한 호기심이 더 컸을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데 왜 갑판에 먼지가 쌓이는지.
먼지는 어디서 왔을까? 다윈은 하르마탄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하르마탄은 겨울철 북아프리카 내륙에서 서아프리카 해안으로 부는 건조한 열풍이다. 온 세상을 사막의 모래로 덮어버릴 기세로 강력하게 부는 바람이다. 그러나 귀국 뒤 동료가 확인한 먼지 성분에 아프리카의 흔적은 없었다. 동료 과학자는 적어도 67종의 생물체를 먼지에서 발견했다. 그중 두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물에서 사는 것들이었지만, 아프리카의 원생동물과 식물은 없었다. 다윈은 이를 통해 작은 생명체들은 바람을 타고 아주 멀리까지 퍼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모든 위대한 발견이 그렇듯, 다윈의 업적은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바로 그를 발탁한 비글호 선장 피츠로이였다. “항해 중에 우리가 방문한 여러 나라의 자연사를 연구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피츠로이 함장 덕분이다”. <비글호 항해기> 서문 중 일부다. 해군 출신이었던 피츠로이는 전임 함장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지적이면서도 대화가 잘 통하는 과학자를 찾았다. 그렇게 채용한 인물이 갓 대학을 졸업한 다윈이었다.
피츠로이는 진화론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날씨는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비글호 항해를 통해 얻는 경험 때문이었다. 단지 믿음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영국 기상청의 전신인 상무부 기상국 초대 국장에 임명돼 일기예보를 시도한다. 세계 최초의 일기예보였다.
다윈과 피츠로이. 비글호 항해는 진화론뿐만 아니라 일기예보에서도 역사적인 항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