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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기철 칼럼] 암흑기 맞은 야권, 각자 걸맞은 책임부터 지라

등록 2022-06-08 13:45수정 2022-06-09 02:38

진보개혁 진영은 5년, 길게는 10년의 모색기, 암흑기를 거쳐야 할지 모른다. 출발점에 선 지금 걸어온 길부터 냉철히 돌아봐야 한다. 책임론을 피해갈 이유가 없다. ‘네 탓’이 아니라 제 잘못부터, 큰 잘못부터 작은 잘못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드러내놓고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시작할 수 있다.
6.1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이 마련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당 지도부와 관계자들이 개표방송 시청 후 자리를 비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6.1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개표상황실이 마련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당 지도부와 관계자들이 개표방송 시청 후 자리를 비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백기철 | 편집인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내리 심판받으면서 당의 진로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당분간 혼돈은 불가피해 보인다. 어쩌면 진보개혁 진영은 5년, 길게는 10년의 모색기, 암흑기를 거쳐야 할지 모른다. 그럴수록 긴 호흡으로 단단히 가야 한다.

다시 출발점에 선 지금 그간 걸어온 길부터 냉철히 돌아봐야 한다. 굳이 책임론을 피해갈 이유가 없다. ‘네 탓’이 아니라 제 잘못부터, 큰 잘못부터 작은 잘못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드러내놓고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시작할 수 있다.

지난 5년 민주당 정권의 행태를 보면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고,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팬덤정치에 숨어 제각각 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외면했다. 지지자들의 떠들썩한 열광 속에서 남 탓, 무오류의 비이성적 정치 행태가 만연했다.

뭐라 해도 문재인 전 대통령 책임이 크다. 퇴임 직전 45%의 역대급 지지율을 보였지만, 성공한 대통령이라 칭하기 어렵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선 패배로 문 전 대통령은 가장 크게 책임을 추궁당하고 심판받았다.

안희정, 박원순, 오거돈 성폭력 사태를 두고 ‘대각성’해야 했음에도 면피에 급급했다. 애초 당헌대로 서울·부산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게 명확히 책임지는 길이었다.

조국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모든 걸 떠넘기려다 결국 정권까지 내주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윤 전 총장을 발탁하고 사태를 방관한 문 전 대통령 책임이 일차적이다. 추미애 전 장관 등 여권 핵심들의 실책도 만만찮다.

조국 사태로 드러난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한 검찰주의는 이젠 정권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반성 없는 윤 대통령의 검찰중심주의 폐해는 머지않아 임계점에 달할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은 여러 차례 사과했고 너무도 참담한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로 인해 정권에 등 돌린 이들이 납득할 만한 진정 어린 사과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

부동산 실정에 대해서도 대통령부터 참모, 장관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들어본 적이 없다. 유동성 운운할 뿐 후세에 경계로 삼을 만한 뼈아픈 반성의 말은 없다. 노무현·문재인 두 정권의 부동산 실패사는 낱낱이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의 책임은 누구보다 크다. 어려운 구도에서 크게 선전했지만 패인을 5년 실정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후보를 둘러싼 논란들이 발목을 잡은 건 사실이다. 지방선거 패배 역시 어느 정도 예고됐지만 이 후보와 송영길 전 대표의 ‘동시 출격’ 자책골로 패배 폭을 키웠다.

이 의원부터 온전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책임이 클수록 먼저, 더 크게 회초리를 맞는 게 좋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 의원에게 8월 전당대회 출마를 유보하라고 했는데, 흘려들을 얘기는 아니다. 이 의원이 전당대회 등 당의 정치 일정, 본인 거취 등에서 좀 더 열린 자세로 접근했으면 한다. 당을 효율적으로 장악하는 것보다 살아 숨쉬게 하는 게 중요하다. 멀리 뛰려면 지금은 웅크려야 할 때다.

노무현·문재인 정권 10년간 당과 정부의 요직을 맡은 이른바 ‘문파’ 핵심 인사들은 지난 5년을 돌아보며 자숙해야 한다. 자신들이 어느덧 기득권이 된 건 아닌지 살펴야 한다. 두 선거 패배의 책임을 모두 이 의원에게만 돌리려는 이낙연 전 총리 그룹 인사들도 자중해야 한다.

팬덤정치에 업혀 이쪽저쪽 돌격대장 노릇을 한 초·재선 의원들은 반성해야 한다. 검수완박에 앞장서 탈당했던 민형배 무소속 의원이 훈장 단 것처럼 복당하겠다고 큰소리치는 건 볼썽사납다. 성희롱 논란을 빚은 최강욱 의원은 적절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책임은 지지 않고 상대방만 깔아뭉개는 ‘네 탓 정치’로는 미래가 없다. 책임지지 않을 거면 조용히 물러나 있기라도 해야 한다. 책임이 덜한 사람들,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말을 경청해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 말을 대변하는 이들을 무대에 올리고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각자에게 걸맞은 책임을 합당하게 지지 않고선 미래를 고민할 수 없다. 민생과 정책, 비전을 얘기하기 어렵다. 책임을 고루 따진 뒤에야 정말로 백가쟁명할 수 있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인물의 진출도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다.

자신에게 드리운 책임의 무게를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인이고 지도자다. 책임질 줄 아는 이에게 미래가 있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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