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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산하의 청개구리] 자연파괴 공약 남발을 멈춰라

등록 2022-06-05 18:39수정 2022-06-06 02:35

지난달 23일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에서 열린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추진하는 강원도지사 후보 규탄’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환경단체 회원들이 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에서 열린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추진하는 강원도지사 후보 규탄’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환경단체 회원들이 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또다시 선거철이 왔다가 갔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집단적 의사 선택의 계절을 또 한번 치른 것이다. 만인이 만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또는 무한 경쟁의 세계에서 살다가 이따금 이렇게 한데 모여 중지를 모으는 일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매번 우리는 이를 해내고 있다.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서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진정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

세상에 이런 일을 하는 다른 생물이 우리 말고 있을까? 길거리를 수놓는 대자보, 확성기를 켜고 동네방네 구석구석 도는 유세차량,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선거송. 이런 것들을 하는 생물은 당연히 우리 인간뿐이다. 하지만 모여 사는 동물이라면 집단적 의사결정은 필수이다. 우리의 선거만큼 복잡하고 야단스럽지는 않아도 어떤 종의 집단이 하나의 전체로서 어떤 결정을 함께 내리는 일은 자연계에서 매우 흔한 현상이다.

동물 집단이 한꺼번에 어딘가로 이동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가령 고릴라는 집단의 성체 65% 이상이 소리를 내면 그게 일종의 ‘투표’ 기능을 함으로써 어딘가로 이동할 순간이 되었다는 결정에 이른다. 하마드리아스 개코원숭이는 성체들의 자세가, 아프리카 물소는 암컷 성체들 시선의 대다수가 어디를 향하는지에 따라 집단의 이동 방향이 결정된다. 큰고니는 성체들의 목 움직임 강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모두 한꺼번에 공중으로 비상하는 집단적 의사결정에 도달하기도 한다.

구성원들이 각각 기여하며 어떤 전체적 결정에 이른다는 점에서는 우리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러나 작금의 선거와 가장 큰 차이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것이다. 동물의 집단적 의사결정은 누군가 어떤 이득을 보상으로 내거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집단적 의사결정 자체가 핵심이다. 반면에 우리는? 후보가 유권자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약속하는 게 오히려 핵심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경향은 점점 강화하고 있다.

나만의 기분 탓일까?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퍼주기 공약의 남발이 극에 달했다. 어느 펼침막을, 어느 전단을 보더라도 해당 지역 주민의 물질적이고 직접적인 이득을 적나라하게 겨냥한 공약으로 넘쳐났다. 아예 현금을 내건 사례도 있었음은 물론이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정말로? 그렇다면 반 학우들에게 과자 돌리는 반장 선거와 무엇이 다른가? 선거 과정에서 금품수수는 금지하면서, 선거의 결과로서 거의 같은 것을 약속하는 것은 어찌 괜찮단 말인가? 지금의 선거는 그저 ‘혹할 만한’ 것이라면 뭐든 말해도 되는 장이 되어버렸다.

그 공약 남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단연 자연이다. 모든 개발 사업은 엄격한 환경영향평가는 물론 사회적 당위를 철저하게 검정받아야 하는 것인데도 그냥 말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가령 이미 40년간 논란이 되어온 설악산 케이블카를 한 후보가 나서서 ‘완성’하겠다는 말은 그간 모든 절차와 과정에 대한 완전한 무시이다. 다른 곳의 다른 후보들도 잇달아 케이블카를 조기 건설하겠다고 장담하는 것도 같은 자세이다.

야생 동식물들이 우리의 선거철에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했다면 얼마나 경악을 금치 못할까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지역구마다 더 많은 도로, 더 많은 개발 사업들을 끝도 없이 내걸고 있을 때 거기에 반드시 포함되지만 숨겨진 말은 바로 자연 파괴이다. 자신들의 서식지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을 전제로 벌어지는 이 웃지 못할 풍경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 순간 모르더라도 그 여파는 어차피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얻는 이익 그 자체도 이미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약의 남발은 더더욱 민주주의의 꽃 안에 있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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