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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세훈 시장의 ‘준비된 차별’

등록 2022-06-02 18:01수정 2022-06-03 02:37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가 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신고를 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가 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신고를 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4선에 성공했다. 이번 선거에서 그가 내세운 슬로건은 ‘준비된 미래’였다. 과연 누구를 위해 준비한 미래인 걸까. 앞으로 서울시가 펼칠 행정으로 답이 나오겠지만 오세훈 시장의 당선을 축하하며 나는 기대와 우려를 담아 이 칼럼을 준비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오 시장을 ‘무상급식 조례’와 함께 떠올리겠지만, 그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조례가 하나 더 있다.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서울광장 조례)다. 서울광장은 1897년에 고종이 대한문 앞에 넓은 터를 만든 게 시초다. 오랫동안 ‘시청 앞 광장’으로 불렸다. 3·1 만세운동부터 6월 민주화항쟁, 월드컵 응원까지 시민의 힘이 분출되는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지만, 사실 광장이라기엔 차가 다니는 도로였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진짜 광장을 시민의 품에 돌려준다며 잔디가 깔린 지금의 ‘서울광장’이 탄생한 것은 2004년이다. 그러나 거창한 명분과 달리 시민들이 광장을 사용하려면 시장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했다. 대부분 관변 행사가 열렸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혔다. 특히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차려지자 서울광장에 시민들이 모일까 봐 정부는 아예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워 광장 출입을 막았다. 이어 6·10항쟁 기념행사까지 불허하자 시민들은 분노했고, 이를 계기로 “광장을 열어라! 민주주의를 열어라!”는 취지의 서울광장 조례 개정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10만명의 주민동의를 얻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조례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2010년에 개정안이 서울시의회를 통과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대법원에 ‘서울광장 조례 무효 확인 소송’까지 낼 정도로 끝까지 반대했다.

서울광장 사용이 신고제임은 그 누구보다도 오세훈 시장이 가장 잘 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안철수 후보가 ‘외국에선 퀴어 퍼레이드가 도심 밖에서 열린다’는 엉터리 정보와 함께 서울퀴어문화축제도 서울광장에서 하면 안 된다는 차별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 오세훈 후보는 우아하게 ‘서울광장 사용은 시장이 결정하는 사안이 아니며, 광장심의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결정하면 된다’는 말로 차별주의자 혐의를 피해갔다. 그러나 여기엔 속임수가 있다.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원회)의 논의를 거치는 것 자체가 차별이기 때문이다.

2019년 서울시인권위원회가 이미 서울시에 권고한 바 있다. 광장에서 열리는 다른 행사와는 달리 유독 서울퀴어문화축제만 “시민위원회에 그 결정권을 일임함으로써 집회의 주최 측에 부당한 차별과 업무 지체를 겪게” 한다며 ‘시장은 광장 사용신고자의 성별·장애·정치적 이념·종교 등을 이유로 광장 사용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조례에 명시돼 있음을 지적했다. 시민위원회를 내세우니 짐짓 시장이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원 임명과 위촉 권한은 시장에게 있다. 가령, 현재 시민위원회는 올해 3월 전면 물갈이됐는데 위원장은 국민의힘 법률위원회 소속 변호사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올해 7월16일에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하기 위해 조례 규정에 따라 지난 4월13일 광장사용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가 접수되면 즉시 서울광장 누리집에 올리고, 48시간 안에 수리해야 하지만 서울시는 아직 조직위의 사용신청서 접수 사실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회의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시민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린다며 계속 기다리라고만 한다. 지금 시민위원회의 구성으로 보면 불허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불안한 상황이 5만명이 넘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순수한 민간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성소수자 축제라는 이유로 겪고 있는 차별이다.

오 시장은 서울전문가인가 차별전문가인가. 서울은 특별시인가 차별시인가. 정말 미래를 열고 싶다면 당장 광장을 열어라. 다양성이 공존하는 광장이 곧 민주주의다. 2009년에 이어 또다시 광장을 닫는 시장이 되진 마시라. 준비한 미래가 ‘준비된 차별’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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