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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레기’의 대안이 고작

등록 2022-05-26 19:01수정 2022-05-27 02:37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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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의 환상타파] 전명윤 | 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1996년에야 여행을 시작한 탓에 혁명 전야의 나라를 현장에서 직접 보진 못했다. 혁명으로부터 20년쯤 지난 시점에야 이란이나 베트남 같은 곳에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혁명을 수호하는 빛바랜 깃발만을 보았다.

거리엔 총칼을 든 군경이 있었다. 총과 칼은 시민을 보호하지 않았다. 혁명을 의심하는 시민으로부터 혁명을 보호할 뿐이었다. 내가 본 혁명은 크루아상의 겉면처럼 약하기만 했다.

‘이란 좋아요? 호메이니 좋아요? 하메네이 좋아요?' 한명을 제외한, 내가 만난 모든 이란 사람은 이 세마디 영어밖에 할 줄 몰랐다.

‘혁명은 유통기한이 짧아 금세 상해 버린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혁명이란 말은 언젠가부터 한국에서도 사라졌고, 개혁이나 대안이라는 말이 혁명이란 단어를 대체했다. 부숴버리자는 말보다는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자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대안학교를 시작으로 대안이라는 말이 쏟아졌고, 사람들은 언론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대안미디어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하면서 등장했다. 조중동을 악의 축이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란 말은 꿀같이 달았다. 때마침 ‘나꼼수' 열풍은 수많은 정치 시사 팟캐스트의 탄생을 알렸다.

대안미디어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것은 자본과 권력 대신 청취자 혹은 시청자의 선의였다. 2000년대 초 그 공간에서 공적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대안미디어라는 매체가 그리 낯설지도 않았다. 때마침 홍콩에서 우산혁명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이런 이야기를 원하는 팟캐스트 한곳을 골라 국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자본과 권력, 그리고 사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독자들의 후원금'과 ‘알려지지 않은 건강한 기업의 광고'라는 장밋빛 계획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규모가 작은 대안미디어는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기존 언론보다 사주의 입김에서 더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 매체는 자신을 진보라 믿는 수구들이 주요 청취자'라는 정의는 비록 술자리 한정이긴 했으나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고, 좋은 쌀을 판다던 광고 기업은 쌀에 등급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듯했다. 사회자 겸 패널인 사주는 방송에 끼어들며 틀린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손 들고 녹음 중지! 틀린 내용이니 재녹음합시다, 라고 말하는 건 매번 용기가 필요했다.

‘대체할 수 있긴 한 것일까’라는 본질적 의문을 가지게 된 건, 청취자 권력의 존재 때문이었다. 대안미디어는 특정 정파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기계적 중립조차 뜨뜻미지근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다 보니 수익 구조의 거의 전부가 독자 후원과 자체 쇼핑몰 매출이다. 에피소드 건건이 어찌하면 우리 청취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방송, 혹은 편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태생적 편파성은 청취자의 입맛에 맞아야 생존이 가능한 구조로 인해 점점 더 과격해지고, 돈을 쏘는 청취자들의 입맛에만 맞는다면 적당한 오보는 무시됐다. 크로스체크는 취재자의 양심에 의존하고, 게이트키핑은 독자가 듣기 좋은 소리인지 아닌지가 판단의 전부였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논조가 등장할 때마다 자본과 권력의 입김으로부터 매체를 보호하겠다던 청취자 권력은 후원 중지, 쇼핑몰 불매를 통해 매체를 길들였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대안미디어들에 의해 탄생한 음모론, 과도한 편향은 이런 구조 속에서 나왔다.

베트남과 이란 거리에서 ‘도대체 혁명이란 무엇인가' 끝없이 자문하며 길을 떠나고 머물기를 반복했다. 단지 20년이란 시간이 그들을 변하게 했던 걸까?

지금도 경천동지할 그 무엇이 있다고는 하지만, 숨겨진 진실이란 그리 많이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설사 드물게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우리가 아는 고정관념을 깨면서 등장하기에 항상 불편함을 동반한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정치적으로 편안한 이야기에 진실의 무게가 넉넉할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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