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신씨가 지난 14일 열린 <당신의 이름이 꽃입니다> 북 콘서트장에서 책 첫머리에 이름 꽃을 쓰고 있다. 박석신씨 제공
[전국 프리즘] 송인걸 | 전국부 선임기자
한국화가 박석신씨가 쓴 〈당신의 이름이 꽃입니다〉(도서출판 비엠케이) 북콘서트가 지난 14일 오후 대전 테미오래(관사촌) 옛 충남도지사 관사 뒤뜰에서 열렸다. 햇살은 맑았고 바람은 상쾌했다.
책 첫머리에 이름으로 꽃을 그려주던 박씨 앞에 한 중년 여성이 섰다.
“엄마 이름도 되나요?”
“그럼요.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 영 자, 우 자…”
여성은 작지만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잠시 뒤 “엄마도 이름이 있고 여자인데 한번도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지켜보던 많은 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박씨는 이 여성의 엄마 이름에 호박꽃을 그렸다. 그는 “땅에서 자라는 덩굴에서 피는, 주변에 흔한 꽃이지만 따뜻하고 넉넉한 품이 우리네 어머니와 닮아서”라고 호박꽃을 그린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여기 계신 분들은 앞으로 호박꽃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겁니다.”
박씨가 이름 꽃을 그린 것은 2007년께부터다. 가슴 아픈 사연으로 대전지역 한 병원 암 병동을 찾았다가 환자와 그 가족들의 슬픔을 나누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선뜻 다가오는 이들이 드물었지만, 하루하루가 지나 한달이 되고, 해가 바뀌면서 그의 붓에 환자·가족들의 웃음과 한숨이 쌓여서, ‘이름 꽃 써주기’는 이 병원의 명물이 됐다.
박씨는 “참 많은 이름을 썼는데 자기 이름을 써달라는 이는 없었다. 가족은 떠날 이를, 환자는 남을 이를 기억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가 쓴 이름은 남성보다 여성, 특히 어머니 이름이 절대적으로 많았단다. 왜 여성, 그 가운데서도 어머니 이름이었을까. 오랜 세월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차별받아온 여성들은 ‘나’가 아니라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아왔고, 그렇게 불렸기 때문이리라. 특히 엄마는 가족을 위해 묵묵히 희생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미덕인 존재였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게 상식이 돼가고 있다. 누군가의 부속물이 아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가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유’처럼, 민주주의 국가라면 누구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바로 ‘평등’이다. 당연하게도
얼굴색이나 인종, 국적, 성별, 외모, 고향, 사상, 직업, 학력, 장애 등으로 부당한 차별과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2022년 대한민국 사회는 평등한가.
박석신씨가 이름 꽃을 그리기 시작한 2007년, 제17대 국회에서 평등법, 일명 차별금지법이 처음으로 발의됐다. 하지만 박씨가 이름 꽃을 활짝 피운 지난 15년 동안 차별금지법은 발의와
폐지를 거듭해왔을 뿐이다. 보수 기독교단체 등이 ‘모든 차별’에 성적 지향 등이 포함돼 있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질병분류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해 제정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5월17일)을 하루 앞둔 지난 16일, 대한민국 최대 개신교연합기구인 한국교회총연합(UCCK)은 성명을 내어 “소수자 인권보호를 명분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 정치권은 차별금지법 입법 시도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또한 그 자체로 존중받고 자유와 공정, 인권과 평등한 연대를 누릴 권리가 있다”며 차별금지법 입법을 재차 촉구했다. 서로 상반되는 두 주장이 나온 이날에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대표와 미류 책임집행위원은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안 심사를 요구하는 단식을 이어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차별금지법 공청회 실시를 위한 계획서를 채택했다. 15년이면, 한단계 높은 수준의 자유와 평등을 누리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에는 충분한 시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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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신씨가 지난 14일 <당신의 이름이 꽃입니다> 북콘서트장에서 한 어린이의 이름 꽃을 써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석신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