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농성장에는 ‘불법 도로점용에 대한 계고 통지서’가 붙어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자고, 국회 앞에서 단식투쟁 29일째다. 지난주부터 대통령 취임식 무대를 만든다고 어수선하더니 토요일 오후에는 어린이들의 합창 소리가 들렸다. 취임식 총감독은 “어린이, 청년, 사회적 약자”들의 노래와 춤으로 공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10일 취임하는 대통령은 이들이 바라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준비가 되었을까.
아닌 듯하다. 취임식을 앞두고 농성장 자진철거 요청이 왔다. 우리는 당연히, 떠날 이유도 없고 떠날 수도 없다. 대통령경호처도 당연히, 강제로 내보낼 근거가 없다. 그런데 농성장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요구에 국회사무처든 대통령경호처든 아직 아무런 약속이 없다. 하기야 차별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국회나 정부가 먼저 나서서 지켜준 적 있던가. 그래도 나는 다가오는 밤이 두렵지만은 않다. 평등은 철거될 수 없다는 걸 더욱 깊이 깨달아온 한달이었기 때문이다.
단식투쟁을 시작하며 말했다. “평등이 밥이다, 상은 다 차려졌다, 국회는 숟가락만 들고 오시라, 저도 숟가락을 내려놓고 기다리겠다.” 놀랍게도 평등의 밥상은 계속 차려진다. 날마다 동조단식과 문화제에 오는 분들이 곡진한 마음으로 자신의 용기와 이야기를 내어놓고 가신다. 걸음 옮기기가 힘겨워지다가도 어느새 힘이 차오른다.
출신 국가가 달라 소풍 날 김밥을 싸주지 못했던 엄마, 친구들이 놀리니 엄마한테 화내는 것밖에 할 줄 몰랐던 자신을 누군가 고백했다. 차별인 줄 모르고 지나쳤지만 차별이었기 때문에 삼켜지지 않았던 기억들. 차별받아본 사람은 안다. 자기 안으로 파고들던 혐오와 자책을 세상을 향해 돌리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그가 이제 비건 동료들이 평등하게 둘러앉을 수 있는 밥상은 어떤 것일까 고민하게 됐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면, 서로의 용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얼마 전에는 김지은님이 조용히 다녀갔다. 국회의원들의 2차 가해 발언이 몸에 박혀 있어 국회 앞으로 오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을 꼭 나누고 싶어 왔다는 그의 용기는 또 다른 용기들과 만난다. 첫 사람의 용기. 경사로가 없어 편의점 방문을 포기했던 누군가가, 왜 경사로가 없냐고 항의하며 방문하는 첫 사람이 되고, 내가 누구인지 말해도 될지 두려워 숨던 누군가가, 동성 동반자를 위해서도 돌봄휴가를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첫 사람이 된다. 성차별이 기본값인 회사를 언제 어떻게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던 누군가가, 무엇부터 바꿔볼지 동료와 도모하는 첫 사람이 된다. 이건 뒤집혔던 세계가 바로 서기 시작하는 이야기다. 우리를 세상에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세상을 우리에게 맞추기 시작하는 것이므로.
차별금지법은 서로의 용기를 연결하는 법이다. 먼저 싸운 사람의 언어를 공적인 것으로 만들어 누군가 더 작은 용기로도 첫 사람이 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대응한들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지레 포기했던 사람들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예감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제 다르게 말하고 싶어졌다. 세상은 달라진다고, 우리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곳곳에서 달라질 것이고 달라진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나저나 간절해진 마음들을 국회는 무슨 수로 이기려고 늑장인지 모르겠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지역·성별·나이·지지정당을 불문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는 결과도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4월 국회에서 할 수 있었고 해야 했다. ‘구조적 차별은 없다’는 대통령이 등장하는 시대에 차별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자리를 왜 내놓지 않는가. 촛불 이후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고 국민동의청원 제도를 만들어놓고 1년이 되어가도록 법안 심사도 안 하는 몰염치는 무엇인가. 이 책임이 고스란히 더불어민주당에 있다는 걸 민주당은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함께 지은 평등의 밥상은 취임식을 앞두고 치워질까. 행여 그렇더라도 이내 곧 더 풍성한 밥상이 차려질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달라졌으므로. 평등의 봄은 해산되지 않는다.
미류·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