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지난 3월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실에서 코로나비상대응특별위원회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내리는 판단. 무엇에 의거해서 결정할 것인가? 사실 거의 웬만한 상황에 적용되는 말이다. 왜냐하면 모든 제반 조건과 자료가 완벽하게 파악된 상황이란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맞는 결정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요소를 고려하고, 분석을 시도한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뛰어도 상황의 불확실성 자체를 결코 완전히 말소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결정은 일종의 도박인 셈이다.
갈수록 증가하는 불확실성에 둘러싸인 현대인은, 그래서 점점 더 과학에 의존한다. 과학적 사고에 근거한 자료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결론 도출 과정에 대한 신뢰가 그 어느 때보다 증폭된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 생활의 어마어마한 의존도를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적인 자료나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하고자 한다면, 그 판단을 수행하는 사고방식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말하자면 과학을 표방하는 듯하면서도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전개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가령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지난 3월 카페 안 일회용품 규제 유예 발언이 그 좋은 예이다. 차기 정권에서 마치 과학을 상징하는 것처럼 거론되고 있는 안 위원장은 폐기물을 줄이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규제를 유예하는 것이 좋겠다고 발언했고, 이 한마디에 환경부는 4월1일부터 금지하기로 했던 정책을 급선회했다. 즉, 시행은 하되 계도기간을 두고 과태료 부과는 무기한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안 위원장의 발언은 물론, 이로 인해 일어난 정책 노선의 변화 모두 비과학적일뿐더러 과학의 근간이 되는 가장 기초적인 논리성과 합리성에 위배된다. 우선 안 위원장이 코로나19 방역의 일환으로 일회용품을 언급했다는 사실이 가장 얼토당토않은 대목이다. 전세계를 집어삼킨 팬데믹에 대한 방역을 논하면서 가장 먼저 초점을 맞추는 대상이 카페 내 일회용품이다? 다른 모든 사안을 놔두고 굳이 일회용품을 콕 집어 문제 삼는다는 건 본 질병의 감염 기전은 물론 사회 내 전파와 관련 인자들의 상대적 중요도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이미 코로나19 발병 첫해부터 다회용품 사용이 안전하다는 사실이 공표되었으며, 공간과 표면을 통한 접촉보다는 사람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전파에 있어서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 이제 국제적 중론이다. 또한 이미 여러차례 제기된 반박처럼, 식당에서 다회용기가 버젓이 대량으로 매일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립될 수 없는 발언이다. 세척을 하고도 바이러스가 전파되었다면 이미 전세계에 안 걸린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유독 카페에서 마시는 음료수에 대해서만 ‘찝찝함’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비논리적인 것임은 자명하다. 게다가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의 증가가 이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구의 상태와 환경 과학에 대한 철저한 무시와 반과학적 태도다. 현안과 관련해 중요하지도 않은 사안을 불필요하게 강조하면서 오히려 정작 중요한 관련 분야는 쳐다보지도 않는 격이다.
안 위원장의 발언도 발언이지만, 이 근거 없는 ‘호통’ 하나로 정책 방향을 전면 수정하는 환경부의 행태도 비과학적, 비논리적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금지한다면서 과태료는 부과하지 않는다? 그럼 금지가 아니다. 아무런 강제성도 없다면 금지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다. 게다가 이미 2018년에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겪고서 시행된 정책을 두고 무기한적인 계도기간을 둔다? 안 하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무늬만 과학이지, 이 와중에 과학은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