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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일상 회복에도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

등록 2022-05-05 17:46수정 2022-05-06 02:50

지난달 2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직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설치했던 등신대를 치우고 있다. 지난 18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공연장 등의 관객 수 제한이나 좌석 간 띄어 앉기 등도 모두 사라졌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직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설치했던 등신대를 치우고 있다. 지난 18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공연장 등의 관객 수 제한이나 좌석 간 띄어 앉기 등도 모두 사라졌다. 연합뉴스

물리학에 ‘관성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체는 기존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는 운동법칙이다. 요즘 ‘일상 회복’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도 관성의 법칙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외부의 ‘힘’(사회적 거리두기)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코로나19 이전의 삶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서다.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와 처음으로 대면한 2020년,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암울한 전망을 잇따라 내놓았던 걸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봄기운과 함께 찾아온 일상 회복 분위기는 삶의 주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내가 이용하는 공항철도에는 기내용 여행가방을 든 이들이 꽤 눈에 띈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보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될 때는 출근 시간에도 열에 예닐곱번 정도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언감생심이다. 휴일을 맞은 집 근처 공원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삼삼오오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동네 식당가에서도 활기가 느껴진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참으로 소중한 일상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코로나19 이전의 삶은 행복하기만 했을까? 우리가 회복하고자 하는 과거의 일상들이 모두 바람직한 걸까? 일상 회복에도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난 2년 동안 전세계에선 사상 유례 없는 대규모 ‘사회 실험’이 진행됐다. 일하는 방식부터 일상을 누리고 관계를 맺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삶의 영역 곳곳에서 ‘익숙한 과거’와 결별하는 경험을 했다. 감염병 피해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점에서 ‘강제된 실험’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러나 개중에는 ‘코로나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시대에도 ‘종식’되지 않고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잡으면 좋을 만한 것들도 있다.

재택근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코로나19 초기, 많은 기업들은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도 영업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도입해야 했다. ‘이게 될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만족도와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직장인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만족도가 대체로 80% 안팎이다. 기업 인사담당자 조사에서도 생산성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높아졌다는 응답이 낮아졌다는 응답보다 훨씬 많다. 고용노동부 자료(2021년 고용영향평가)를 보면, 코로나19 유행이 끝나도 재택근무를 계속 시행하거나 활용하겠다는 사업체와 노동자 비율이 70%가 넘는다.

재택근무의 이점에 출퇴근 시간 절약, 일과 가정의 양립과 같은 개인적인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사회적 편익도 무시할 수 없다. 출퇴근 교통량이 줄면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 오염 물질과 온실가스가 덜 배출된다. 영국의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은 지난해 5월 발표한 ‘노동시간 단축의 환경 혜택’ 보고서에서 영국이 주4일 근무제로 전환하면 교통량 감소 등으로 인해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연간 1억2700만톤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택근무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또 출퇴근 부담이 줄면 ‘직주근접’(직장과 가까운 곳에 주거지 유지)의 필요성이 낮아져 서울 도심의 집값 안정과 동네 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지난 2년 동안 자연스럽게 ‘관계 다이어트’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꼭 필요한 사람은 관계의 밀도가 높아진 반면, 불필요한 만남이 줄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과 단지 ‘엮이기 위해’ 소모해왔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정작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거나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은 늘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다. 특히 회식을 비롯한 반강제 술자리가 줄어든 점은 매우 바람직한 변화다. 10여년에 걸친 캠페인으로도 좀처럼 정착되지 않던 ‘119(한가지 술로 1차까지만 하고 9시 전에 귀가) 음주 문화’가 순식간에 ‘뉴노멀’이 됐다. 최근 일상 회복이 이뤄지면서 회식 등 잦아진 대면 접촉과 출퇴근 스트레스 탓에 직장인들 사이에서 ‘엔데믹 블루’라는 신조어가 회자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 전반적으로 ‘비대면 문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도 큰 변화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웬만한 기자회견이나 간담회, 토론회 등은 대부분 화상회의 플랫폼 ‘줌’이나 유튜브로 중계된다. 언론사 등의 국제 포럼도 마찬가지다. 사실 한두 시간의 강연을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낭비이자 거품이다. 비행기는 가장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요즘엔 아이들이 온라인 독서실에 모여 공부한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적도 있다. 서울에 집중된 대중 강연이나 강좌가 대거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전국 어디에서나 수강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이 모든 것이 ‘비대면’을 통해 시공간의 장벽이 사라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프면 쉬자’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신종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황에서 감기 증상이 있는 직원에게 출근을 강요하는 건 집단감염과 ‘셧다운’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고용 형태와 직장 규모에 따른 ‘쉴 권리’의 격차를 해소하는 일도 과제로 떠올랐다. 법정 유급 병가와 상병수당 도입 논의가 시작된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이 두 가지가 모두 없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대체로 하반기 코로나19의 재유행을 예견하고 있다.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로 감염병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면서 ‘상시 감염병’ 시대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팬데믹을 겪는 과정에서 형성된 ‘뉴노멀’은 향후 감염병 대응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삶의 질도 높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일상 회복 물결에 이런 ‘긍정적 유산’까지 떠내려 보내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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