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영국의 존 왕(1166~1216)
4월1일 만우절의 유래는 무얼까? 결론부터 말하면 모른다. 로마의 봄 축제에서 왔다고도 하고 프랑스의 역법 개정에서 비롯했다는 말도 있다. 나라마다 사회마다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될 터.
영국 쪽 주장이 눈길을 끈다. 고담 사람들이 바보 흉내를 내어 존 임금을 속였다는 민담에서 만우절이 왔다는 것이다. 두가지가 흥미롭다. 하나는 고담이라는 지명.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고담과 같은 이름이다(“소돔과 고모라를 합쳐 고담”이라는 해석이 한때 돌았는데, 사실무근이다). 또 하나는 존 왕. 로빈후드 이야기에 악역으로 나오는 그 인기 없는 임금이다.
존 왕이 행차를 했다. 고담 사람들은 임금이 자기네 고을을 지나가는 게 싫었다. 여러 종류의 이야기가 있는데, 작가 제임스 볼드윈에 따르면 고담 사람들이 나무를 잔뜩 베어다 길을 막았다는 것이다. 존 임금은 화가 났다. 고담 사람들의 코를 잘라오라고 지방관에게 명령했다.
“사람이 똑똑하다고 하면 처벌받습니다. 하지만 바보가 피해를 봤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지방관이 오면 우리 모두 바보처럼 행동합시다.” 고담 사람 도빈이 제안했다. 이윽고 고담에 도착한 지방관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고담 사람들이 들판에 벽돌담을 둘러 쌓는다. 어째서? 들판에 새를 가두어 두기 위해서라고 했다. 고담 사람이 문짝을 떼어 등에 지고 걷는다. 왜? 도둑이 문을 뜯고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토머스 블런트에 따르면, 어떤 사람은 물에 장어를 빠트린다고 했다. 장어를 익사시키기 위해. “고담 어디를 가도 이 모양이구나.” 결국 지방관의 보고를 전해 들은 왕은 “바보들을 처벌해 무엇하나” 하며 포기했다고 한다. 해피엔딩이다.
역사 속 존 왕은 무서운 폭군이라기보다 무능한 정치인이었다. 아버지 헨리 2세, 어머니 엘레오노르, 형 리처드 1세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전임자들과 달리 존은 매력이 없었다. 프랑스한테는 노른자위 땅을 빼앗겼고 교황과도 척을 졌으며 귀족들의 반란에 시달렸다. 바보짓을 한 쪽은 이야기 속 고담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속아 바보가 된 쪽은 임금이다. 권력자와 엮이길 피하는 옛사람 마음이 나는 좋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