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모 방송사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제목이다. 기상청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범상치 않은데 흥미로운 부제까지 달았다. 사내연애 잔혹사 편. 속편을 염두에 둔 것일까. 일단 사내연애 자체는 생뚱맞지 않다. 다른 정부기관과 달리 기상청은 유독 사내커플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잔혹사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해피엔딩이 더 많다고 들었다.
지난여름 드라마 제작 소식을 처음 들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기상청 사람들의 일과 사랑을 담는다고. 그런데 주연 배우가 ‘박민영’과 ‘송강’이라니. 이름만으로도 기대가 되었다.
첫 방송. 예상대로 주연 배우들의 외모는 압도적이었다. 전혀 공무원 같지 않은 외모와 복장, 그리고 톡톡 튀는 대사들. 주연 배우들의 외모에 가려졌지만 드라마 속 기상청 사람들의 일상에는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특히 날씨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예보하는 국가기상센터의 모습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그리고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전문 용어들. 마치 의학드라마나 범죄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드라마들에 이미 익숙해져서일까. 기상 용어들이 불쑥불쑥 등장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첨단 관측 장비도 엿볼 수 있었다. 남자주인공이 광덕산을 오르는 장면이었다. 선녀구름 사진을 찍어 여자친구에게 보내고 내친김에 산 정상 레이더센터를 방문하는 주인공. 축구공 모양의 돔 안에 천천히 회전하는 기상레이더가 등장한다. 실제 장면이다. 고도 1064m 산 정상에 설치된 이 이중편파레이더는 경기도와 강원도를 이동하는 구름을 관측한다.
광덕산을 포함한 전국 곳곳의 레이더 영상은 국가기상센터 화면 전면에 등장한다. 한반도를 배경으로 마치 점묘화처럼 그려진 영상. 빨간색이 강수가 의심되는 지역이고 하얀색은 맑은 곳이다. 여기서 빨간색 점들을 강수 ‘에코’라 부른다. 방송 첫 회에만 여러 차례 등장한다. 에코, 우리말로는 메아리다. 남의 말을 따라 하는 그리스 신화 속 님프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레이더 영상에 에코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은 사실 레이더의 관측 원리 때문이다. 레이더는 발사한 전파가 비, 눈, 혹은 우박에 부딪혀서 되돌아오는 것을 측정해 비구름을 관측한다. 산속에서 ‘무야호’를 외쳤을 때 장애물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듣는 것처럼.
첫 방송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총괄예보관 진하경 과장(박민영 배우)이 이시우 특보(송강 배우)를 처음 만나는 대목이다. 3월14일, 수도권 동쪽에서 구름이 급격히 발달하고 있었다. 선임예보관은 날씨가 건조하기 때문에 구름이 발달하더라도 비는 내리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사실 봄철 대기가 건조한 경우 비는 지상에 닿기 전 이미 증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시우는 남쪽에서 수증기를 공급받으면서 작은 구름은 수 시간 안에 비구름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허락도 없이 수도권 호우 특보를 발표해 버린다. 참고로 드라마 밖 실제 날씨는 흐림이었다.
진하경은 이시우의 독단적인 행동을 추궁하고자 그를 찾아간다. “대체 뭐니 너?” 상급자의 질책에 이시우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한다. “때 시에 비 우. 때맞춰 내리는 비. 이시우입니다.” 이름을 묻는 것이 아닌데 당돌하게 자신의 이름을 설명한다. <맹자>(孟子)에 등장하는 시우(時雨). 아마도 복선일 것이다. 이시우가 진하경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복선.
주연만큼이나 조연들의 연기도 빛났다. ‘날씨를 중계하지 말고 예보를 하라’고 다그치는 예보국장,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최과장, 예보에 진심인 엄선임, 그리고 사내커플 오주임. 드라마 결말이 벌써 궁금하다. ‘예보는 과학이다’라고 단언하는 진하경 과장과 예보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이시우 특보의 사내연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