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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신남방정책을 넘어 더 멀리

등록 2022-03-24 18:02수정 2022-03-25 02:31

[전명윤의 환상타파] 전명윤 | 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많이들 ‘문명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사라져버리는 ‘문명’이라는 게임에 등장하는 한국은 다른 곳보다 과학력이 월등한 문명으로 소개된다. 이 게임은 나름의 역사고증에 따라 해당 문명의 비기가 등장하는데, 한국의 비기는 화차와 거북선이다. 거북선은 같은 시기 타 문명의 전투함선들을 압살해버리는 오버테크놀로지의 극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거북선 유닛은 내해에서만 운항이 가능하다. 게임 속 많은 문명이 대항해시대를 열고 신대륙을 개척할 때도 거북선은 대양으로 나갈 수가 없다. 실제로 조선은 먼바다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렇게 우리의 바다는 내내 삼면의 연근해에 불과했다. 중국은 의주를 거쳐 육로로 넘어갔으니 서해를 넘을 일도 없었다. 그나마 조선통신사가 오가던 대한해협이 우리의 유일한 대양이었을지 모른다.

영화화된 덕에 이제는 많이 아는 문순득이라는 홍어장수가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와 필리핀의 루손섬, 마카오를 거쳐 중국을 종단했으나 그조차 국가 경영에 밑천이 되기는커녕 ‘사람이 그러길래 농사나 지어야지 뭔 장사를 한다고 돌아다니다 해난사고를 당하냐’는 핀잔만 들어야 했다. 실학자였던 정약전의 기여가 없었다면 이 놀라운 이야기 자체가 아예 소실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야 우리는 태평양 너머 미국을 본격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부 수립 이후 오랜 기간 한국의 바다는 오로지 태평양뿐이었다. 우리가 최근 이뤄낸 경제적 성과의 대부분은 더 넓은 바다로 나갔을 때 이루어졌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평가받을 긍정적인 면이 있다. 미·중·일·러, 그리고 감초처럼 등장하던 유럽연합(EU)만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나라에 갑자기 아세안과 인도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의 무대가 남중국해와 벵골만, 그리고 인도양으로 더 넓게 확장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신남방정책은 기본적으로 아세안 10개국+인도와의 교류와 교역을 미·중·일·러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게 골자였다. 14억의 인구, 국내총생산(세계 6위) 기준으론 한국보다 몇단계 위에 있는 인도와 아세안이 등가인 것은 지인파를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아쉽긴 했지만, 우리의 시야가 대한해협과 태평양을 넘어 확장되고 있다는 건 여러모로 긍정적인 신호인 것은 분명했다.

정권의 황혼기, 그리고 새 정권의 여명기다. 이제 와 신남방정책을 돌아본다면 그래봐야 결국 베트남에 편중되었을 뿐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순 있다. 그리고 이는 5년 내내 꽤 아쉽게 바라보던 대목이다.

몇달 전, 아는 교수를 통해 파키스탄대사관에서 좀 보자는 언질이 왔다. 쉽게 말해 대외적으로 파키스탄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여행을 활성화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어찌해야 할지를 묻는 일종의 컨설팅 의뢰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 의뢰가 긴밀히 진행되지는 못한 상황이지만, 그들이 한국에 바라는 건 그저 관광만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 “인도만 챙기지 말아라. 왜 신남방에서 우리는 빠져 있냐. 우리도 인구 2억2천만의 대국이고, 젊은 노동력이 남아돈다” 같은 이야기를 공통으로 쏟아내고 있다. 그저 매체에 쪽글이나 쓰는 작가에게 오죽 답답했으면 이러나 싶을 때도 많다. 특히 방글라데시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영원무역의 사례는 파키스탄이나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국가의 실무자들을 만날 때 반드시 나오는 이야깃거리다. 우리야 영원무역이 고작 의류업체일 뿐이지만, 방글라데시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이 회사는 베트남의 삼성과도 같은 존재다.

정권이 바뀌었다. 현 정권과 단절해야 할 것도 계승할 것도 있을 것이다. 엄연히 한계는 있지만 신남방정책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저 너머를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이제는 신남방정책을 넘어 한걸음 더 멀리 세상을 바라볼 차례다.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에도 관심을 기울일 시점이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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