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5년 전의 일이다. 2017년 5월2일, 당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정의당에 대한 지지는 다음 선거에 하셔도 괜찮지 않겠나. 이번에는 정권교체에 집중하는 게 시대정신 아닌가 하는 호소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이젠 후회할 것이다. 정의당을 지지해도 괜찮다고 말한 그다음 선거가 바로 지금이고, 앞뒤 가리지 말고 정권교체에만 집중하자는 말도 어느새 국민의힘이 가져갔으니 말이다.
민주당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이것이다. 당장 챙길 이익만 생각하고 장기적 전망은 세우지 못한다. 자신들이 처음 발의를 해놓고도 15년째 제정을 미루고 있는 차별금지법만 봐도 그렇다. 촛불 정신은 어디 갔냐는 실망감에 정권교체가 답인가 싶지만 딱히 제1야당이 더 나은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이 선출한 대통령 후보는 자신을 ‘석열이 형’이라 불러달라면서 시민의 절반인 여성을 가볍게 무시한다. 선거는 국민의 일꾼을 뽑는 과정인데 뜬금없이 국민의 ‘형’ 자리를 노린다. 게다가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공약은 ‘여성가족부 폐지’다. ‘형’의 안중엔 여성도 없고, 가족도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나 다 있는 구조적 성차별이 한국에만 없다고 우긴다. 페미니즘 때문에 남녀가 연애를 못한다거나 외국인들 때문에 건강보험이 적자라는 가짜 뉴스까지 동원하며 혐오를 활용한 정치를 서슴지 않는다. 거대 양당의 유력 대선 후보들이 매일 쏟아내는 망언과 비리 의혹이 너무 커서 다른 후보들의 존재감과 정책이 국민에게 가서 닿을 틈조차 없다.
이번 대선의 비극은 이뿐만이 아니다. 여론조사에서 1위와 2위의 차이가 초박빙일수록 소수정당의 지지율은 낮아진다. 의미 있는 한 표를 행사했다는 효능감을 느끼고 싶은 유권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당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표는 ‘사표’가 된다는 압박을 넣기 때문이다. 저 후보를 당선되게 할 거냐며, 나라를 망하게 할 거냐며 협박한다.
표가 죽다니 말이 안 된다. 국민의 뜻이 담긴 한 표, 한 표인데 너무 쉽게 말한다. 모든 표는 다 살아 있다. 기억하자. 선거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다. 한 표라도 더 받은 사람이 무조건 당선된다는 점에서 승자가 독식하는 냉정한 시스템 같지만, 선거의 미덕은 투표와 관련된 모든 것이 숫자로 남는다는 점에 있다. 총유권자 수가 몇명이고 이 중에서 투표를 몇명이 하고, 몇명이 기권했으며 몇명이 어느 당과 어느 후보를 지지했는지 등이 고스란히 기록된다. 이어서 전문가들이 붙어서 해석을 하기 시작한다. 어느 지역의 사람들이, 어느 연령대의 사람들이, 어느 성별의 사람들이 어떻게 투표를 했는지를 분석한다. 이를 민심이라고 부른다.
선거가 끝나면 표가 죽는 게 아니라, 내 표는 데이터로 살아남는다. 선거는 달리 말하자면, 어떤 권력도 영원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는 제도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내 표는 당선자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선거 전까진 민심을 자기 마음대로 포장해서 떠벌린다고 해도 선거 후에는 그럴 수가 없다. 숫자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든 국민은 모두 각자의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니 어느 후보를 찍었다고 서로 탓할 것도 없다. 이재명을 찍든, 윤석열을 찍든, 심상정을 찍든, 김재연과 오준호, 이백윤을 찍든 그 외 다른 후보를 찍든 말이다. 누가 되든, 누굴 찍었든 우리 모두는 선거 이후의 세상을 함께 살아갈 운명 공동체다. 부당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있을 때 또 함께 싸울 것이다. 역대급의 비호감 대선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혼탁한 선거일수록 1등만을 향하지 않는, 1등만을 바라지 않고 던져지는 소위 ‘죽은 표’가 많아야 한다. 예상을 뛰어넘는 데이터가 나올수록 오히려 선거 후의 사회가 더 활기차게, 그리고 단단하게 지탱된다. 이 원리가 민주주의라고 나는 믿는다. 당당하게 투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