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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의 저널리즘책무실] ‘비호감 대선’에도 ‘호감 대선 보도’ 가능할까

등록 2022-02-16 22:24수정 2022-02-17 02:33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ho@hani.co.kr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 한다. 대선 보도는 ‘역대’ 어디쯤일까.

한국언론학회·한국언론진흥재단 등이 지난 8일 개최한 ‘제20대 대선보도 점검’ 세미나에서 김춘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번 대선 보도를 다음 네가지 틀로 평가했다. ①정책 검증 보도 실종 ②여론조사 뉴스를 통한 여론형성 과정 왜곡 ③정치적 냉소주의를 부추김 ④혐오(증오) 감정을 저널리즘 비즈니스 수단으로 활용 등이다.

늘 지적되는 대선 보도 문제점이 있다. △과도한 정파성 △단순 중계방송 △후보자나 정당 주장에 대한 사실 검증 없는 인용(따옴표 저널리즘) △정책 실종과 정쟁 일변도 등이다. 디지털·포털 시대가 되면서 불특정 다수 언론은 바이럴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 대선은 공개된 큰판이다. 단순 중계·인용은 별다른 전문성이나 투자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연합뉴스>보다 더 빨리 기사를 포털에 내보내면, 포상을 한 언론사도 있다. 이런 ‘고속도로’에 정책 아닌 정쟁을 얹는 건 그게 더 잘 팔린다는 경험에 기반한 상업성 때문이다. 미디어 생태계 지형상 앞으로 이런 경향은 구조적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 외적 차원에선 언론이 객관성이라는 외피를 두르려 할 때, 중계·인용에 빠진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위해선 ‘사실과 의견’의 분리가 출발선이다. 그럼 ‘의견’은 없고 ‘말한 사실’만 전했으니 객관적인가. 언론이 그처럼 취재원의 배달부 노릇만 하면, 세상에는 말할 힘 있는 자의 아우성으로 가득 찰 것이다. ‘말한 사실’을 그대로 전한다는 형식적 객관 보도가 의도치 않게 강한 자를 더 강하게 만드는 불공정한 보도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말의 사실’을 따져야 한다. 조직과 네트워킹을 갖춘 전통적 언론이 ‘말한 사실’에만 머물려 한다면, 언론사가 굳이 기자(저널리스트)를 둘 이유가 있을까. 내구성 좋은 조직원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대선 보도의 핵심 문제인 정파성은 후보 간 대결이 치열할 때 더욱 노골화된다. 최근 일부 신문의 기사, 내외부 칼럼 등에서 ‘닥치고 정권교체’, ‘무조건 단일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다. 심판이 감독, 선수가 된 듯하다. 애정 어린 조바심이 느껴진다. 기이하다. 단일화 이슈가 불거지면, 언론은 이에 대한 사실, 배경, 전망, 반응, 그리고 평가를 전하면 된다. 언론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그다음은 시민들의 몫이다. 북 치고 꽹과리 치지 않아도, 이제 시민들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있다.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언론은 가치는 지향해야 한다. 가치중립성에 머물려 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

<한겨레>는 이번 대선 보도에서 두가지 주요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유권자와 함께하는 대선 정책―나의 선거, 나의 공약’ 시리즈(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30946.html)와 온라인 토론 플랫폼 ‘청년 5일장’(https://www.hani.co.kr/interactive/debate/f0c62g4.html)이다. ‘나의 선거, 나의 공약’은 기후위기, 집, 플랫폼 노동, 성평등, 돌봄 등 주요 의제 6개를 설정한 뒤, 유권자 100여명을 인터뷰해 이들 삶의 현장 목소리를 담아 이를 4명의 주요 후보 캠프에 전달하고, 답변을 받는 방식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지면에 싣는데, 뉴스가 쏟아지는 이 와중에도 주제마다 1면을 포함해 4개 면씩을 할애한다. ‘청년 5일장’은 한겨레 누리집 안에서 기본주택, 주 4일제, 연금개혁 등을 놓고 후보 캠프와 청년들이 다 함께 온라인 댓글 논쟁을 벌이는 형식이다. 두 기획 모두 유권자와 후보를 연결하려 했고, 그리고 후보가 아닌 유권자로부터 출발했다. 이재명 심상정 안철수 후보가 직접 본인 계정으로 꽤 긴 댓글을 성의 있게 달며 토론에 참가했다. 아쉽게도 두 기사 모두 상대적으로 후보들 발언 보도에 견줘 클릭 수도 적고, 대선판에서 큰 화제가 되진 못하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다. 그러나 비록 주제별 댓글 참가자는 20~30명에 그쳤지만 단 한 건도 허투루 넘길 게 없었다. ‘댓글만으로도 이처럼 진지한 공론(청정 댓글)이 이뤄질 수 있구나’라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본다. 어쨌든 흥행성을 온전히 이뤄내지 못한 점은 과제로 남았다. 이번 기획이 ‘해봤는데 어차피 사람들은 정책 기사는 안 봐’라는 아픈 경험으로 소비되지 않고, 다음 발걸음을 준비할 소중한 체험자산이 되길 바란다. 또 이런 준비된 기획성 대선 보도 외에 일상의 대선 보도에서도 소통과 공론, 사실 전달이 아닌 사실 확인의 기조를 어떻게 살릴 것이냐 하는 게 또 다른 숙제다.

건강기능식품 회사에는 소비자의 건강이 최우선이지만, 이를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맛을 연구한다. 그래서 요즘엔 쓰디쓴 보약을 불편하게 달여 먹지 않아도 된다. 몸에 좋은 건 시작일 뿐 끝이 아니다. 맛있고 간편하게 널리.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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