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거는 한겨레] 송호진 | 디지털미디어부문장
며칠 전,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4인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기후·에너지 분야 주요 용어인 ‘아르이(RE)100’과 ‘유럽연합(EU) 택소노미’를 “들어본 적 없다”며 되물은 상황이 입길에 올랐지요. 언론이 토론회를 다룬 유형은 여러가지였습니다. 먼저 재빠르게 온라인 커뮤니티 한두개를 둘러보는 방법. 그곳에서 “알이백은 뭐지? 소주 이즈백은 아는데”라는 누리꾼 반응을 얼른 낚아채 기사 제목으로 내세운 종합일간지가 있었습니다. 아차, 싶었는지 이 기사가 인용한 커뮤니티 반응을 뒤따라 옮겨 적은 경제지, 종합지 기사들이 이어졌습니다. 한 후보가 묻고, 다른 후보가 답을 제대로 못 한 것에 특별히 주목해 ‘장학퀴즈’와 비슷했다고 평가한 통신사 기사도 나왔습니다. 윤 후보가 “그게 뭐죠?” 하고 물었던 용어들이 국제사회에 왜 등장했는지, 대선 후보가 그런 국제 흐름에 어떻게 대응할지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짚은 기사도 있었습니다. <한겨레>가 택한 방식이었습니다.
‘소주 이즈백’과 ‘장학퀴즈’를 앞세우지 못한 한겨레는 ‘기사 조회수(클릭수)’에서 손해를 봤겠지만, 그래서 한겨레 디지털 기사는 경쟁력과 매력도가 떨어진 기사였다고 낙심해야 할까. 토론회를 다룬 저희 기사를 본 분들의 반응 가운데 격려 말씀이 기억납니다. “내가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를 떠나, 이런 기사를 기다렸습니다.”
이번엔 이 기사를 얘기해보려 합니다. 최근 저희 기사 가운데 한겨레 누리집에서만 12만명 가깝게 읽은 기사가 있습니다. ‘백신 맞아도 오미크론 걸리는데…접종 왜 하냐고요?’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포털사이트에서 손쉽게 기사를 ‘클릭’하는 시대에, 이분들은 왜 한겨레에 직접 들러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 기사를 보셨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기사는 오미크론 변이가 번지는 상황에서 많은 분들이 걱정하거나 궁금해했던 물음을 던집니다. 그런 뒤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의 감염·위중증·사망자 비율 등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기사를 읽을 분들이 무엇을 궁금해할지 미리 생각하고 그 의문을 최대한 해소해드리는 것에 중점을 둔 기사입니다. ‘뉴스AS’라는 코너 이름이 이 기사에 붙은 이유입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저희 기사를 기다리고, 그 기사가 의문을 풀어주거나 진실의 핵심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돼, “이런 기사를 기다렸다”는 만족감을 쌓는 경험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죠. 그래서 저희는 이런 시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고정된 시간에 특정 프로그램을 배치해 내보내는 방송 편성표처럼, 정해진 시간에 고정 코너를 한겨레 누리집에서 만나는 ‘디지털 기사 편성표’를 구성해보는 것입니다. 매주 일요일 오전에 내보내는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코너를 기다리는 분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확대해보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며칠 사이 쏟아진 뉴스를 보다가 ‘그건 왜 그럴까?’ 고개를 갸웃거린 궁금증을 다룬 코너를 매일 아침 선보이는 것입니다. 오전 10시엔, ‘저희가 더 취재해보니 이건 이렇습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뉴스AS’나 정치 이야기를 다룬 ‘정치바(Bar)’ 코너 등을 통해 뉴스 행간에 숨은 맥락을 전해드리고요. 오후에는 저희가 듣고 기록해야 하는 곳을 직접 찾아간 ‘현장’ 이야기를 만나보신다면 어떨까요? 미래과학·동물·환경·기후위기·젠더, 사진기자들의 사진 이야기 등도 디지털 편성표에 배치될 것입니다. 코너는 추가되거나, 수정·보완하며 변화해갈 것입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몇번의 클릭으로 찾을 수 있는 정보들을 끌어모은 콘텐츠가 아니라, 몇번의 현장 걸음과 여러번의 추가 물음으로 이뤄진 취재의 결과가 담기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일 겁니다.
어떤 시인은 기다림이란, 상대가 “보고 싶고, 그냥 생각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각나고, 찾아보고 싶고, 기다려지는 한겨레 기사와 코너가 점점 늘어나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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