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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재승 칼럼] “폭등한 집값 떨어뜨리겠다”는 후보가 없다

등록 2022-02-02 18:35수정 2022-02-02 19:34

여야 후보 가릴 것 없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해 서민·중산층의 고통이 극심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정작 “집값을 떨어뜨리겠다”고 약속하는 후보는 없다. 그냥 이 상태로 가자는 건가. 지금 집값 수준에서 무주택자들이 집을 살 수 있다고 보는가.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한 청년세대에게 다시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비정상적인 집값을 정상화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정교한 공약 없이 서민·중산층의 고통을 얘기한 건 입에 발린 소리일 뿐이다.
급매매, 급전세, 급월세 등 안내문이 붙어 있는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연합뉴스
급매매, 급전세, 급월세 등 안내문이 붙어 있는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연합뉴스

안재승 | 논설위원실장

문재인 정부를 임기 내내 괴롭혀 온 집값이 마침내 꺾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27일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1월 넷째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전주 대비 0.01% 떨어져 2020년 5월 넷째주 이후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몇몇 구별로 집값이 떨어지는 곳들이 있었으나 서울 전체 평균이 내려간 것은 20개월 만이다. 아파트 수급 동향도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1월 넷째주 서울의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전주보다 1.9포인트 낮은 89.3을 기록했다. 2019년 7월 넷째주 이후 2년6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매매수급지수는 100 아래로 내려갈수록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둘째주부터 올해 1월 셋째주까지 집값이 19.7%나 오른 상황에서 겨우 0.01% 내린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하향세는 일시적이 아니라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들은 집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인식, 강화된 보유세,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도심 중심의 공급 확대 정책 등을 그 이유로 꼽는다.

여기에 더해 전셋값이 안정세를 보이는 것도 집값 하락론에 힘을 실어준다. 전세 매물이 쌓이면서 1월 넷째주 서울 아파트 전세값 변동률이 0%를 기록했다. 상승세를 멈춘 것이다. 2019년 6월 이후 2년7개월 만이다. 전세시장 역시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서울의 1월 넷째주 전세수급지수는 91.8로 2019년 9월 이후 가장 낮았다. 전세값 하락은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를 어렵게 만든다. 집값 급등의 주된 요인 중 하나가 제거되는 것이다.

물론 속단은 금물이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월별 기준으로 집값이 떨어진 적이 두차례 있었다. 첫번째는 2018년 ‘9·13 대책’이 나오고 11월부터 2019년 6월까지 7개월이다. 1.96% 하락했다. 그러자 보수언론들이 “거래 빙하기“ “주택시장 한파” “재개발·재건축 시장도 눈물 뚝뚝” “폐업 공포에 떠는 중개업소” “건설 투자 외환위기 수준” “금융시스템 충격” 등 상황을 침소봉대하면서 정부에 규제 완화를 연일 촉구했다. 결국 정부도 분양가상한제 등 추가 대책 시행을 주저했고 집값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2019년 ‘12·16 대책’이 나온 뒤에도 2020년 4월과 5월 두달 연속 집값이 떨어졌다. 0.3% 하락했다. 하지만 12.16 대책의 핵심인 종합부동산세 강화를 여야가 합심해 무산시킨데다 코로나 대응을 위해 금리가 대폭 인하되면서 집값이 또 치솟았다. 특히 코로나발 경기 침체를 우려한 한국은행이 2020년 3월부터 5월까지 2개월 새 기준금리를 1.25%에서 0.5%로 0.75%포인트 내린 게 결정적이었다. 저금리의 영향으로 시중에 풀린 막대한 자금이 집값에 기름을 부었다.

지금은 지난 두차례의 집값 하락기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과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를 통한 시중 유동성 흡수, 강화된 보유세와 도심 중심의 공급 확대 정책 등으로 투기 목적의 수요와 ‘패닉 바잉’ 같은 가수요가 크게 줄었다. 특히 금리 인상은 주택시장에서 돈의 힘으로 집값을 끌어올리는 유동성 장세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14일까지 5개월 새 기준금리를 0.5%에서 1.25%으로 0.75%포인트 올렸다.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도 조기 금리 인상 방침을 밝혀 한은이 올해 추가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문제는 경제가 아니고 정치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대선 후보들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해 서민·중산층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이재명 후보는 “이재명 정부에서는 누구도 주택 때문에 고통받지 않게 하겠다”,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과 전셋값이 폭등해 내 집 마련과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심상정 후보는 “온 국민이 부동산 문제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정도다”,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미친 집값, 미친 전셋값, 미친 세금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집값을 떨어뜨리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이를 실행할 정교한 공약을 내놔야 한다. 그런데 말이 없다. 그냥 이 상태로 가자는 얘기인가. 지금 집값 수준에선 서민·중산층의 주택 구입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건지, 집값을 떨어뜨리지 않고 무슨 수로 청년세대에게 다시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주겠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집값 안정’이라는 모호한 얘기가 아니라 무주택자를 위해, 자녀 성장 등의 이유로 집을 넓혀 이사하려는 실수요자들을 위해 비정상적인 집값을 정상화하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겉으로는 서민·중산층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목소리 큰 고가 주택 보유자들의 눈치를 보는 건 비겁하다.

더욱이 후보들의 구체적 공약을 보면, 심상정 후보를 제외하곤 되레 집값을 더 올리는 공약들이 많다. 애초 보유세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재명 후보는 올해 재산세 동결로 후퇴하더니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까지 약속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더하다.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고 종부세와 재산세를 통합하고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는 최고 2년 유예하는 ‘집부자 감세 종합 선물세트’를 내놨다. 재건축·재개발 완화도 빠뜨리지 않았다. 안철수 후보도 종부세 등 부동산 세금의 전면 재검토를 주장한다. 개별 지역의 집값을 부추기는 지역 공약들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앞다퉈 광역급행철도(GTX)) 노선 연장 공약을 내놓자 경기 안산, 안성, 평택의 집값이 뛰어오르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비록 임기 후반까지는 집값을 잡는 데 실패했지만 보유세 강화,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 대출 제도 개편, 공급 확대 등 일관된 정책을 펴면서 임기 말에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집값 안정 장치들을 하나하나씩 해체했고, ‘빚 내서 집 사라’는 2014년 박근혜 정부의 ‘7·24 대책’으로 집값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8년 간 계속된 집값 상승의 시발점이었다. 차기 정부에서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를 금할 수 없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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