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 미디어전략실장
조금 딱딱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어봅니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증권별 소유자 수 500인 이상 외부감사대상법인은 해마다 사업보고서를 내야 합니다. 한겨레신문사도 이에 해당합니다. 지난해 한겨레신문사 사업보고서 ‘주요 사업의 내용’ 항목엔 “당사는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신문판매, 광고사업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기업”이라 적혀 있습니다. ‘목적사업’으론 ①신문 및 정기간행물 발행 ②서적 출판업이 맨 윗자리를 차지합니다.
불쑥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한겨레>가 하는 일의 형태는 무엇인지, 당연한 듯하면서도 답이 모호한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입니다. 물론 언론사의 업태는 대체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아우르는 편입니다. 저희 회사의 정관상 목적사업에 상업인쇄 및 인쇄 관련 서비스업 등이 명시됐듯이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무게중심은 제조업에 확연하게 쏠린 게 현실입니다. ‘신문’이라는 구체적 물성을 지닌 인쇄물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결과겠죠. 간혹 이런저런 회사 소식이 화제에 오를 때면 누군가 “공장 얘기 그만하자”는 우스갯소리를 꺼내는 배경일 겁니다.
21세기 들어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곳곳에서 ‘업의 재정의’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익숙한 틀을 여지없이 깨부수는 거죠.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 세상입니다. 예컨대 화제의 패션기업 스티치 픽스는 제조업체인가요, 서비스업체인가요? 의류업체의 옷을 구매하여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알고리즘 분석으로 소비자 스타일에 적합한 제품을 선별해 배달하는 스타트업입니다. 응당 제조업이라 여겨지는 패션산업을 다시 정의한 셈이죠. 자동차를 ‘만들어 팔던’ 제조업체 현대자동차가 정체성을 모빌리티서비스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가장 앞서 세상의 변화를 지켜보면서도 제 몸뚱어리 변화엔 가장 굼뜬 존재가 미디어기업입니다. 한겨레를 포함한 레거시 미디어가 딱 그렇습니다. 좋은 콘텐츠(기사)를 생산하면 독자가 당연히 소비하리라던 종래의 고집은 모든 산업이 지각변동에 휩쓸리는데도 그다지 변하지 않은 듯 보이네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200년 전 세이의 법칙이 레거시 미디어들엔 2022년에도 믿음으로 작동하나 봅니다. 유통과 최종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적다 보니, 디지털 전환이란 유행 구호 역시 생산공정을 바꾸는 소란 속에 파묻히곤 합니다. 조직구조나 조직문화에 서비스란 개념이 애초부터 탑재되지 않은 거죠.
이 점에서 2022년 국내 미디어산업의 화두인 탈포털의 파장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습니다. 포털의 뉴스 서비스 시장 철수가 가시화함에 따라 디지털 뉴스 유통 구조가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돼서죠. 콘텐츠 생산-유통-소비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간 언론사의 행태는 냉정하게 말해 백화점(포털) 일괄 납품에 가까웠습니다. 콘텐츠 소비(소매) 시장이 형성되지도 작동하지도 않은 거죠. 조금 비약하자면 현재의 상황이 한국 경제를 쓰러뜨렸던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외환위기 이전 우리 경제에서 시장은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관치금융이 돈의 물꼬를 좌지우지했고 거래 관행에서 온갖 비시장적 요인들이 판을 치는 탓에 기업들의 머릿속엔 서비스나 브랜드란 개념이 들어설 리 만무했죠. 외환위기는 수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렸지만, 이와 함께 체질 개선에 성공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사이를 냉혹하게 가르는 시험대였습니다. 시장의 응징, 소비자의 응징이었던 거죠.
지금이야말로 언론사들도 서비스의 관점에서 업의 재정의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업무 공정을 재정비하고 당연시했던 조직구조를 다시 그려야겠죠. 한겨레 역시 피할 수 없는 숙제입니다.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서비스 관점에서 바라보기. 디지털 전환의 열쇠는 거기 있지 않을까요.
(※사족입니다. 여기까지 써놓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지난해 기준 29살 이하 국내 인구는 1500만명을 웃돕니다. 외환위기 이후에 태어났거나 혹은 적어도 아주 어릴 적 일이라 외환위기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별다른 심리적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세대겠죠. 전체 인구의 약 30%가 이럴진대, 낡은 틀을 벗어던지자면서 외환위기를 비유로 끌어댄 것 자체가 낡디낡은 생각의 증거입니다. 반성합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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