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베르트 모리조(1841~1895)
그림을 잘 그리는 자매였다. 언니 에드마는 재능이 있었다. 동생 베르트 모리조가 질투할 정도였다. 그런데 언니는 결혼과 함께 살림에 치여 그림을 그만뒀다. 그런 시대였다. 동생은 결혼을 뒤로 미뤘다. 먼저 화가로 자리잡아야 했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작품 활동을 뒷바라지해줄 남자를 만났다. 남편 외젠 마네는 노력하는 남자였다. 유명한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동생이기도 했다.
한동안 나는 모리조를 소개할 때 이 이야기를 했다. “에두아르 마네와 ‘썸’을 탄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이다. 에두아르 마네는 모리조를 모델 삼아 작품을 10여점이나 그렸다. 그런데 무리한 추측이다. 외젠 마네와 모리조는 사이좋은 부부였다. 설령 에두아르 마네가 모리조를 좋아했대도, 중년 남성의 일방적인 짝사랑을 연애라고 말하면 안 된다.
앞으로는 이렇게 소개해야겠다. “베르트 모리조가 없이는 인상주의도 없었다.” 그는 주위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렸다. 친정 식구를 그리고 딸 쥘리 마네를 그리고 남편을 그렸다. 가볍게 가볍게 호방한 붓질로 밝은색을 발랐다. 화실에 불을 켜고 그리는 대신 햇빛을 받으며 보이는 대로 그렸다. 생활인의 감각도 가벼운 붓놀림도 자연광의 탐구도, 우리가 인상주의 회화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성격 까다로운 남자 작가들을 한데 묶어준 사람도 모리조다. 에두아르 마네가 젊은 무명 화가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그림을 받아들인 것도 모리조가 다리를 놓았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는 젊은 작가대로 덕을 봤다. 이름 난 화가 마네가 함께 그림을 걸어준 덕분에 인상주의 전시회는 더 빨리 눈길을 끌 수 있었다. 당시의 평론가는 인상주의 전시회에 걸린 작품 중 모리조의 작품이 가장 뛰어나다고 썼다.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려보라고 마네에게 권한 사람이 모리조라고 한다. 모리조의 연꽃 드로잉을 보고 클로드 모네가 연꽃에 꽂혔다고 한다. 모네가 말년에 ‘수련’ 연작을 그린 것도 그래서라는 이야기다. 실력 있는 화가가 마네의 ‘뮤즈’로 먼저 기억되어 아쉽다. 태어난 날이 1841년 1월14일이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