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장미 소년’은 대만의 인기 가수인 채의림(차이이린)의 노래 제목이다. 엽영지(예융즈)라는 실존 인물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고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징하기도 한다. 엽영지는 열다섯살의 중학생이었다. 그는 학교 화장실에서 다량의 피를 흘린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다음날 사망했다. 학교는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해버렸고, 부검에서 타살과 자살 그 어느 쪽의 가능성도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사망 원인은 미궁에 빠졌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한가지가 있었다. 엽영지가 왜 쉬는 시간이 아니라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갔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엽영지는 중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줄곧 괴롭힘을 당했다.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여러명이 우르르 달려들어 바지를 벗기곤 했다. 놀리고 때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학교에 여러차례 대책을 요청했지만 교사들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저 아무도 없을 때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수업 시간에 나가는 걸 용인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2000년 4월20일, 엽영지는 여느 때처럼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갔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음악 수업을 하던 교실과 화장실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머리를 크게 다쳐 쓰러진 그는 다른 학생에게 발견될 때까지 혼자 신음하고 있어야 했다. 사고 원인은 6년에 걸친 재판 끝에 결국 학교가 화장실 물탱크를 소홀히 관리한 탓에 물이 새었고, 급히 나가려다 미끄러져 생긴 사고로 밝혀졌다. 학교 관계자들은 처벌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만약 엽영지가 다른 학생들처럼 여유 있게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넘어졌어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가 괴롭힘을 막으려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면? 아니 애당초 남자가 여성스러우면 비정상이니까 놀려도 된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었다면?
엽영지의 죽음은 단순 사고사가 아니다. 사회에 책임이 있다. 놀랍게도 대만 교육부는 바로 움직였다. 2000년도 당시, ‘양성평등교육위원회’가 막 생겼는데 이 역시 1996년에 어느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살해당한 사건이 계기였다. 엽영지 사건 후엔 ‘성별평등교육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남녀 성별 이분법을 넘어서야 성차별과 성폭력이 진정 종식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2004년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까지 포함하여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성별평등교육법’이 제정되었다. 그뿐 아니다. 채의림은 동성 결혼의 시행과 성평등 교육의 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열린 2018년에 ‘장미 소년’을 발표했고, 2019년도 대만의 대중가요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로 선정되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의 이야기지만 이런 사회적인 추모와 반성과 연대의 장면을 한해의 마지막에 꼭 공유하고 싶었다. 2021년은 유난히 한국의 성소수자들에게 슬프고 아픈 한해였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함께 존재했던 사람이 사라지는 상실을 경험했을 때 남은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으로 버텨야 할까.
채의림은 ‘가시 없는 장미가 어디 있어, 아름다움이 완벽한 복수이고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야말로 반격이지’라는 가사로 위로한다. 그래. 성소수자니까 불행할 거라고 속단하는 이들에게, 자꾸만 사회 밖으로 밀어내려는 이들에게 쓸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을 우리가 웃으면서 해내는 것이리라. 그들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뜻대로 사는 것. 삶은 누구에게나 원래 힘들고 주로 고통스러우며 그저 가끔 행복한 순간이 있을 뿐임을 아는 것. 그래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름대로 행복해지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러니 살자.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자로서 끝까지 살아남자. 우리, 끈질기게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