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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재정 칼럼] 간디의 사탕, 군사력의 달콤함

등록 2021-12-19 19:14수정 2021-12-20 02:31

선도적으로 군비 감축을 주도해도 충분할 대한민국 정부가 입으로는 종전을 말하면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추구하고 있다면 평화가 만들어질까. 이번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한-미 동맹을 시나브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핵심 축”으로 격상시키고 사이버 공간뿐만 아니라 우주에서의 전쟁 능력도 향상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전쟁 상태를 지속하겠다는 정도가 아니다. 더 잘 싸우고 더 많이 싸우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23일(현지시각) 공군 1호기를 타고 귀국하면서 동행한 기자들에게 종전선언 등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9월23일(현지시각) 공군 1호기를 타고 귀국하면서 동행한 기자들에게 종전선언 등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연말에 한번 웃자. 2006년께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등장했던 개그 한 토막이다.

엄마: 딸은 밖에서 도둑질을 하고 다니는데 당신은 뭐 했어?

아빠: 난 망봤어~

콩가루 집안이다. 하지만 아빠의 대답에 웃지 않을 재간이 없다. 세상의 기대와는 완전 반대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대화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던 한국 사회는 희망이 있었다. 그 웃음은 공감의 표현이기도 했으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하지만 2021년 말, 한국 사회는 이 개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지는 않을까? ‘그럴 줄 알았어’보다 ‘아무렴 그래야지’가 더 많지는 않을까?

굳이 특정 대선 후보를 호명할 필요는 없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부터 돌아봐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 문 대통령 본인이 유엔 총회를 비롯해서 해외 정상들과 만날 때마다 종전선언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고 세계 여론에 호소하는 데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청와대와 외교부 고위관리들도 적극적으로 평화 외교를 펼치고 있다. 워싱턴과 베이징을 방문해 미국과 중국의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협상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 연구기구뿐만 아니라 유수의 싱크탱크들도 종전선언에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토록 절실하게 자주적으로 평화를 위해 외교력을 쏟아부은 적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현 정부와 민주당은 이러한 종전선언 외교를 스스로 허물고 있기도 하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국방비 증액에 매진하고 있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만들자고 말하면서 첨단무기를 도입하고 개발하라고 돈을 풀어주고 있다. 2017년 40조원이었던 국방비는 문 정부 5년 사이 매년 늘어 2022년 예산은 ‘역대’급인 55조원을 찍었다. 5년 사이에 무려 37.5퍼센트나 늘어난 것이다. 이미 북한의 1년 총경제생산액(국방비가 아니라)의 1.5배를 국방비에 쏟아붓고 있어 “충분히 북한을 이기고도 남”는 대한민국이 국방비를 더 증액해야 하는 이유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당히 말한다. “압도적 전력으로 싸우기 전에 적의 의지와 기를 꺾는 것”이라고. 물론 ‘힘을 통한 평화’가 안보전략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이 그 든든한 배경이다.

선도적으로 군비 감축을 주도해도 충분할 대한민국 정부가 입으로는 종전을 말하면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추구하고 있다면 평화가 만들어질까. 더구나 이미 한미연합사령부는 선제 타격, 참수 작전, 유사시 북한 점령을 의미하는 안정화 작전 등을 작전계획에 포함하고 있고 이의 실행을 연습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서욱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이번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연합방위능력 향상, 관련 작전계획을 최신화”하겠다고 다짐하고 “한반도에서 연합연습”을 지속하겠다고 재확인했다. 한-미 동맹을 시나브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핵심 축”으로 격상시키고 사이버 공간뿐만 아니라 우주에서의 전쟁 능력도 향상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전쟁 상태를 지속하겠다는 정도가 아니다. 더 잘 싸우고 더 많이 싸우겠다는 것이다.

이러고도 평화가 만들어질까. 어느덧 평화의 말과 전쟁의 행동이 공존하는 ‘포스트 진실’의 시대가 된 것인가. 웃찾사가 개그를 해도 모두가 폭소를 터뜨리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닌가. 불안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세모에 평화의 삶을 산 간디를 떠올려 보는 것은 사치일까.

“이 아이는 사탕을 하도 먹어서 이가 다 썩었어요. 사탕은 그만 먹으라고 한마디 해주세요.”

아이를 데리고 온 여인이 간디에게 간청했다. 간디는 엉뚱하게 여인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지금은 어려우니 보름 뒤에 아이를 데리고 다시 오세요.”

먼 곳에서 왔으니 다시 찾아오기 어렵다는 여인을 간디는 굳이 돌려보냈다. 약속대로 보름 뒤 다시 찾아오자 그때서야 간디는 청을 들어주었다.

“얘야, 사탕은 몸에 좋지 않으니 이제 그만 먹으렴.” 그러자 아이는 존경하는 간디에게 머리를 끄떡였다.

여인이 고마워하며 물었다. “왜 그 말씀을 보름 전에는 못 해주셨습니까?”

“그때는 저도 사탕을 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나부터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다. 평화를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강한 힘만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어떻게 해야 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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