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젠더의 벽을 뛰어넘다

등록 2021-12-16 15:27수정 2021-12-17 02:32

[나는 역사다] 데버라 샘슨(1760~1827)

어려서 남의 집에 몸 붙이고 고용살이를 했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경험이 쌓이며 세상 보는 눈도 자랐다. 1770년대에 미국 땅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우리가 독립전쟁이라 부르고 미국 사람들이 시민혁명이라 생각하는 사건이다. 데버라 샘슨은 혁명의 대의에 공감했다. 영국 정부를 향해 총을 쏘고 싶었다.

1782년, 남장을 하고 군대에 들어갔다. 로버트 셔틀리프라는 이름을 둘러댔다. 별명은 ‘몰리’. 생김이 곱상하다고 동료들이 여성 이름으로 부른 것이다. 그래도 키 크고 강인한 그를 동료들은 남성이라고 생각했다. 싸움터에 나가 총에 맞고 칼에 베였다. 칼에 베인 이마는 의사에게 치료받았지만 다리에 박힌 총알은 손수 헤집어 뽑아냈다고 한다. 여성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전쟁 막바지에 병이 나 고열에 쓰러졌다. 의사는 그의 성별을 알아차렸지만 사실을 덮어주었다. 여성임을 숨긴 채 제대할 수 있었다. 그는 평범한 삶을 되찾았다. 1785년에 벤저민 개닛이란 농부와 결혼을 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행복했던 것 같다. 아이를 여럿 낳고 입양까지 했다니 말이다.

문제는 그다음. 미국 정부는 독립전쟁에 자원한 병사들에게 연금을 주었다.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될 돈이었다. 여성인 데버라 샘슨이 남자인 셔틀리프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그는 자서전을 쓰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강연을 했다. 미국 여성 중 최초의 전업 강연자라는 경력도 덤으로 얻었다. 세상의 눈길을 끌었다. 여러 해가 걸렸지만 마침내 연금을 받았다.

나는 데버라 샘슨의 일생을 보고 조선시대 소설 <홍계월전>을 떠올렸다. 여성 홍계월이 남장을 하고 명나라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어 천하를 호령한다는 내용이다. 남성 위주로 돌아가던 전통 사회에 남장여성이 파열을 낸다는 점부터 여러가지로 닮은 이야기다. 그가 태어난 날이 1760년 12월17일이다. 미국 사람들은 과거 그가 애국자라는 점에 주목했다. 지금은 젠더의 벽을 넘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우리로서도 이쪽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미국 사람도 아니니 더더군다나.

김태권 만화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1.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2.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3.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파병 북한군, 능소능대와 허허실실을 구현하다 4.

파병 북한군, 능소능대와 허허실실을 구현하다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5.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