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민주가 퇴행하는 시대에 ‘민주’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뜨거워졌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9~10일 110개국을 모아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열자, 중국은 4일 <중국의 민주> 백서와 5일 <미국 민주 상황>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중국식 민주’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선전전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문제 삼을 때마다 방어에 집중하던 중국이 더 이상 아니다.
‘중국식 민주’란 무엇인가. <중국의 민주> 백서 등을 통해 중국은 ‘전과정 인민 민주’를 실현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서방의 민주주의는 “인민이 투표할 때만 소환돼 깨어나고 투표 후엔 휴면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가 아니”지만, 중국의 공산당 일당 통치는 “국가의 정치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방면에서 인민의 의지를 실현하고 인민의 목소리를 듣기 때문에 ‘전과정이 민주’”라는 주장이다. 미국 정치의 극심한 분열과 지난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사당 습격 사건 등을 꼬집으면서, 미국 민주주의가 “금권 정치화”했고, 1인1표 선거제도는 ‘소수 엘리트 정치’로 변질됐다면서 중국 정치는 “결함 없는 민주”라고 자화자찬한다.
중국이 이토록 소리 높여 ‘중국식 민주’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것은 우선 미국이 ‘민주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틀로 중국 견제 동맹을 강화하려는 데 대한 반격 성격이 크다. 국내적으로는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시진핑 주석이 장기집권의 길로 들어설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할 말을 다 하는 강한 중국의 모습으로 애국주의 여론의 지지를 결집하려는 의도가 있다. 1972년 유신을 선포한 박정희 정권이 ‘한국식 민주주의’를 강조하던 상황과 비슷하다.
더욱 주목할 점은 ‘중국식 민주주의’ 공세가 방어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이 ‘전과정 인민 민주’를 처음 제안한 것은 2019년 11월 상하이를 시찰하면서다. 그에 앞서 2016년부터 ‘보편적 가치관’을 비판하고 중국식 제도·노선·이념·문화의 자신감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2018년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수 있는 전략적 기회가 오고 있다는 의미로 “백년 만의 대변동” 국면이라 진단했다. 그런 정세 판단 위에서 ‘미국식 민주와 중국식 민주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왔다. 시진핑 주석은 최근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등에서도 “민주는 풍부하고 다양하다”며 보편적 민주주의 모델은 없다는 주장을 폈다. 부국강병을 달성한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왔고, 그 다음 단계로 중국식 세계질서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도다.
지금 중국이 보여주는 공세적이고 자국중심적인 ‘중화질서’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자랑해온 국가들이 불평등과 포퓰리즘으로 비틀거리는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중국식 민주’의 훈계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박민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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